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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사 : 전 니케아 시대 - 군주적 감독직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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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니케아 시대

 

배교의 어두운 과정이 접어든 후 로마 카톨릭교회로 나아가는 모습을 여기에서 보게 될 것이다. 배교는 계속해서 일어났다. 사도들의 시기에도 교회는 배교의 모습을 직면했다(20:29-30; 39-10). 사도들이 떠난 후 배교는 수없이 일어났다. 후기 사도적 교회 역사초기시대는 핍박으로 시작했다. 1세기말에 이르러 로마정부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핍박 정책을 정착시켰다. 핍박은 2-3세기에 걸쳐 간헐적으로 일어났지만 313년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 발표된 밀라노 칙령(Edict of Milan)으로 끝났다. 하지만 교회를 위해 수적으로나 지리적으로 놀라운 발전도 있었다. 후기 사도적 교회역사 초기시대를 가리켜 전 니케아시대”(Ante-Nicene Age)라 부르는데 그 이유는 최초의 교회 종교회의였던 니케아 종교회의 전 시대를 말하기 때문이다. 이 회의는 소아시아 니케아에 325년 콘스탄틴에 의해 소집되었다.

 

군주적 감독직 발생

 

처음으로 배교가 교회에 일어났던 형태는 조직화의 타락에서였다. 조직화 타락에서 일어난 처음 단계는 여러 세기동안 진보하면서 무오류 교황이라는 직책으로 변화되었는데 이를 가리켜 군주적 감독직’(monarchical episcopate)-군주적이란 의미는 한 지배’(one-ruling)를 의미하고 감독직이란 감독의 직책’-이라 부른다. 이런 군주적 감독직이 언제 어떻게 시작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가능한 설명은 후기 사도적 시대에 시작했을 것으로 여긴다(20:29-30; 39-10). 교회 조직에 일어난 이런 변화는 2세기 첫 분기에 어디에선가 설립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디옥 군주적 감독이었던 익나티우스(Ignatius, 10-117)는 소아시아 7교회들의 군주적 감독들을 언급하고 있다. 사도적 시대에 장로들’(presbyters)감독들’(bushops)은 서로 각 교회를 감독하는 남성들에 사용되었던 명칭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한 장로가 다른 장로보다 더 우위를 점하게 되었고 감독이란 직책이 그에게 주어졌다. 2세기 초 이러한 변화가 모든 교회에 일어난 것은 아니었고 군주적 감독의 권위는 지역적이었지만 160년에 이르러 군주적 감독직은 거의 우주적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사도적 계승’(apostolic succession)의 개념은 감독들이 사도들의 역할, 권위, 그리고 책임들을 계속 수행한다는 것을 의미했으며 감독직 개념과 연관을 가지면서 위대한 능력과 신적 권능이 주어졌다. 어떤 역사가들은 강력한 감독직 발전은 이단이 발생하므로 교회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요구된 권위를 집중하는데 제도화되었다고 한다. 지역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신약성경적 표현을 볼 수 있다: “poimen pastor shepherd”(4:11); “presbuteros presbyter, 장로와 나이 든 자”(11:30); “maturity and experience”(god 14:23; 20:17); “episkopos bishop overseer, supervisor”(1:1; 20:28).

사도적 교회에 발전된 것과 비교하여 감독직책에 관련하여 성경은 세 가지로 결론 내린다. 먼저, “장로”(elder), “감독”(bishop), 그리고 목회자라는 세 용어는 모두 같은 직책을 교호적으로 사용했다(20:17l 28; 1:5, 7; 벧전 4:11). 장로들이 목회자라는 것을 알지 못하면 교회의 여러 공직자들이 교사들과 복음자들이 언급될 때 장로가 어떻게 생략되었는지 정확하지 않을 것이다. 단지 차이점은 같은 직책에 다른 면을 강조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신약성경 교회는 장로가 있는 것으로 언급할 때마다 장로는 한 장로한 목회자를 의미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신약성경은 지역교회가 항상 장로들의 다수들이 있다고 한다. 주님께서 한 사람이 지역교회의 최고의 감독자로 격상되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듯하다. 만일 지역교회에서 조차 그런 일을 원하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우주적이나 전체적인 지도력을 한 사람이 갖을 수 있을까? 세 번째로 한 장로의 권위가 지역교회를 넘어 영향을 끼친다는 지침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다. 장로들은 하나님의 양떼들을 이끄는 사람들로서 성령이 그들에게 감독자로 세우셨던 것이다(20:28).

 

교회 핍박

2세기초에 이르러 교회는 시리아, 마게도니아, 그리스, 이집트, 그리고 로마 지역에 잘 설립되었지만 소아시아에 가장 활발했다. 하지만 정부적 차원의 반대를 직면했다. 교회는 이미 네로(54-68)와 도미티안(81-96) 시대에 핍박을 겪었다. 그러한 핍박들은 고대사회에 교회 성장에 영향을 끼쳤다. 로마정부는 기독교인들에게 악감을 가졌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황제를 신으로 인정하거나 경배하지 않을 뿐 아니라 기독교인들에 대한 악감은 무신론자라는 고소들에서 비롯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전통적인 신들을 부인했기 때문이었다. 또 그들이 방종하다(licentiousness)는 것이다. 왜냐하면 심야에 몰래 예식을 행하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식인종(cannibalism)이라 보았는데 그 이유는 성찬에 대해 오해를 했기 때문이었다. 기독교인들은 자신들만이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배타적인 사상에 대해 미움을 받았다. 그래서 핍박이 2세기동안 지속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고소와 핍박에 대해 변증자들’(apologists)-apologia라는 그리스어는 변증을 의미하는데-이 일어나 로마 지도자들 앞에 복음과 교회를 철학적으로 변호하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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