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거스틴 주의
어거스틴
어거스틴(Aurelius Augustinus, 354-430)은 사도시대이후 로마 카톨릭교회에 가장 영향을 끼친 지도자였다. 그가 이룬 최대의 공적과 그 근거는 중세동안 로마 카톨릭신학을 형성하고 주도했던 교리제도였으며 프로테스탄트 신학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어거스틴의 견해는 자신의 삶을 잘 반영한다. 그는 이교도 부친과 카톨릭 모친 사이에서 북부 아프리카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다른 종교는 앞으로 그의 사상과 실제적 행동간에 경험하게될 기나 긴 여정을 예상했다. 자신 안에 느꼈던 두 가지 본성, 즉 하나는 세상적이고 다른 하나는 영적이고 이상적인 것이었다. 두 본성 중 낮은 것은 초기 삶을 지배했는데 만족하지 못했던 경험이었다. 학문적 공부와 경력을 추구했던 그는 마침내 384년 이태리 밀라노에서 수사학 교사가 되었다. 초기 삶 동안 여러 철학으로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사로잡히지는 않았다. 북 아프리카로 되돌아온 후 어거스틴의 내적 갈등은 마침내 386년 개종의 열매를 맺게 했고 다음 해에 세례를 받았다. 그는 후에 반달족이 둘러싼 가운데 연로한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될 히포의 감독이 되어 교권제도권으로 진입했다.
아마 어거스틴의 가르침 가운데 가장 기억해야하는 것들은 죄와 구원과 관련된 것들이다. 전 인류는 심지어 유아마저도 아담의 타락의 저주아래서 고통을 받고 있는데 아담 안에서 전적으로 죄를 지었으며 사악하고 소망이 없는 상태에 있다. 하나님은 임의로 사람들을 예정하시는데 구원하시는 수는 제한하셨다. 은혜에 대한 어거스틴의 개념을 보면 개인들이 구원을 위해 스스로 자유의지를 행사할 수 있는 어떤 공간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어거스틴에 따르면 하나님의 은혜는 불가항력적이다. 이런 은혜는 개인의 마음과 삶에 감당할 수 있는 능력, 믿음과 사랑에 스며든다(infuse).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런 개념들은 어거스틴의 삶에 철저히 근거를 두고 있는데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로 인해 죄의 사슬로부터 구원을 얻었던 경험을 그는 갖고 있다.
펠라기우스
이런 어거스틴의 개념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린 자는 아일랜드나 영국의 수도승 펠라기우스(Pelagius)였다. 그는 400년 로마로, 410년 북아프리카에 도착했다. 어거스틴과는 정반대로 그는 사람들 안에 있는 자유의지의 사상을 주장했다. 그의 슬로건은 “해야된다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아담으로부터 어떤 원죄도 유전 받지 않았다. 아담은 단지 따르지 말아야할 나쁜 실례에 불과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죄를 짓지 않을 능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능력을 사용 못할 수도 있다. 펠라기우스는 은혜를 배제하지 않았지만 세례 시 죄들을 용서받고 하나님의 가르침에 순종해야한다고 했다. 어거스틴은 펠라기우스 견해에 대해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펠라기우스는 영향력 있고 능력 있는 후원자들을 지니지 못했기에 여러 종교회의, 황제, 그리고 교황들에 의해 정죄를 받았다. 카톨릭교회와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은 어거스틴의 죄와 구원론 입장을 수용했다.
성경
1) 죄는 아담의 범죄, 죄성, 그리고 영적 중대성들이 후손들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어거스틴의 죄론과 구원론의 근거가 되었다. 죄는 사람들이 유전 받은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 법을 범하므로 행하는 어떤 것이다(요1서 3:4). 유아들은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할 수 없으며(신 1:39; 사 7:16) 성경은 그들에 대해 순수한 상태에 있다고 말씀한다(롬 9:11; 고전 14:20; 마 19:14). 사실 성경은 사람들 스스로가 짓는 죄에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친다(겔 18:20; 고후 5:10). 사람들은 아담 안에서 상징적으로 죄를 짓거나 그의 범죄와 죄성을 유전받은 것이 아니다. 아담의 죄는 간접적으로 모든 사람을 죄 있는 것으로 만들었고 죄의 본보기를 보여주었고 세상에 죄를 소개했다(롬 5:21-22; cf. 마 5:32).
2) 자유의지가 자신의 것이 아니거나 자유하지 않다면 다른 사람의 의지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성경은 사람이 스스로의 의지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마 16:24; 요 7:17). 더욱이 아담은 자신의 처음 죄로 인해 자유의지를 상실했고 인류들에게도 했다고 여겨야 하는 이유는? 사람의 자유의지가 부족하다는 교리는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한 교리는 첫째 죄를 짓는 사람의 책임을 회피할 가능성이 높고; 둘째 하나님께 죄의 책임을 전가할 수도 있고-왜냐하면 죄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셨기 때문에); 셋째 사람들이 범할 수밖에 없는 죄에 대해 하나님께서 정죄하시지 못하도록 할 수 있다.
3)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한 방법으로 임하는데 그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은혜는 저항 당할 수도 있다(행 7:51).
4) 예정론. 성경은 기독교인들의 목적과 대상들에 관하여 이미 예정되었다고 말하지만(롬 8:29-30; 엡 1:5, 11), 특별한 개인들이 하나님에 의해 예정되어 기독교인들이 되게하고 구원받도록 하며 다른 사람들은 지옥에 가도록 하지 않으셨다. 이와 같은 예정론은 하나님을 사람들을 편애하는 것으로 만들며(행 10:34)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려는 뜻과는 정반대를 의미한다(딤전 2:4; 벧후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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