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안주의
그리스도의 본성에 대한 또 다른 개념들은 계속하여 전 니케아와 니케아 시대에 교회의 신학적 전망을 주도했다. 다른 논쟁들이 그 이후에 정면에 나섰지만 그리스도의 본성과 성부와의 관계는 항상 논쟁의 초점이 되었다. 결국 그리스도에 대한 기독교관은 핵심이며 신앙에 있어 가장 독특한 표상이다. 처음부터 그러했다. 유대인들이 복음에 대해 가장 거부감을 가졌던 것도 바로 그리스도 신성이었다. 그리스도 신성에 대한 진리는 영지주의적이고 단일신론적 이단들과 정면으로 싸워야만 했다. 서방교회는 ‘로고스 기독론’을 일찍이 취하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으로 구성된 삼위일체임을 역설했으며 이것은 그리스도의 본성과 성부와의 관계를 가장 잘 표현한 교리였다. 하지만 동방교회는 일관성 있는 결론을 가지지 못했다. 다양한 기독론적 견해를 갖고 있었기에 그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아리우스 교리
아리우스(c. 250-336)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교회들 중 하나의 장로였다.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알렉산더와 교리적 논쟁을 벌였는데 앞으로 2-300년 동안 교회에서 일어난 논쟁이 되었다. 아리우스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피조물들 중 최초이며 최고이라고 가르쳤다. 신적 본질을 가진 것이 아니지만 하나님의 다른 피조물들처럼 무에서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의 도덕적 고결성 때문에 그는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의 아들, 두 번째 하나님(secondary God)으로 채택되었다.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셨다. 아리우스는 그리스도께서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님이시라고 인정하면서도 두 번째이시고 조금 열등하신 하나님이시라고 했다. 그리스도는 전적으로 하나님도 아니시고 전적으로 인간도 아니시지만 하나님과 인간간의 제 3의 인물이다. 성육신 때 그리스도는 인간 육체가 되어 인간적 영과 이성을 취했다. 알렉산더는 이러한 견해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하면서 그리스도는 성부와 동일하게 영원하시고, 성부와 본질상 하나이시고, 전적으로 창조되지 않았다고 가르쳤다. 논쟁은 너무 격했기 때문에 알렉산드리안 종교회의는 아리우스를 정죄 했기에 그는 자신의 견해에 동조하는 사람들 가운데 도피처를 찾았다.
콘스탄틴노플에 제국도시를 건설한 콘스탄틴은 제국의 연합이 이러한 논쟁으로 불가능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단순한 권면으로 평화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325년 니케아에 최초의 범종교회의를 개최했다. 그 곳에서 그리스도는 성부와 본질상 하나라는 것을 신조로 채택했다. 그리스도께서 피조물이고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는 아리안 사상은 거절되었다. 콘스탄틴은 이 신조를 수용하지 않는 자들, 즉 아리우스를 비롯한 사람들을 제국에서 추방시켰다. 하지만 니케아 종교회의는 아리안주의 종말을 의미하지 못했다. 콘스탄틴은 아리우스의 견해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영향하에 있었기 때문에 타협적인 신조를 후원하면서 아리우스를 복귀시키고 도리어 아리안주의 반대 지도자인 아타나시우스(Athanasius)를 추방시켰다.
콘스틴탄의 아들들이 제국을 통치하면서 제국은 나뉘게 되었고 신학적 논쟁에 더욱 얽히게 되었다. 서방의 황제는 ‘카톨릭인들’과 친숙했고 동방의 황제는 아리안들과 친숙했다. 그리하여 세속적 권력 편에서 신학적 문제들이 정치적으로 이용되었다. 아리안주의든, ‘니케아 신앙’이든 특정한 시기에 영향력을 끼치느냐라는 것은 누가 황제의 총애를 받느냐에 달려있었다. ‘니케아 신앙’은 마침내 니케아 신앙 옹호자 데오도시우스(Theodosius)가 황제에 등극하면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381년 데오도시우스는 콘스탄틴노플 종교회의, 즉 2차 범종교회의를 개최하였고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이 모두 한 신적 본질이라는 것을 재 확언했다.
아리안주의가 독일부족들에게 영향력을 끼치지 않았다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질 위기에 있었을 것이다. 5세기말 카톨릭 감독들은 프랑크족 왕 클로비스(Clovis)를 설득시켜 자신들의 보호자, 참피온으로 삼았다. 잔인한 술책을 이용하여 클로비스는 독일부족을 정복했다. 클로비스와 콘스탄틴노플의 비잔틴 황제인 저스티니안(Justinian)의 정복간에 독일인들은 자신의 아리안 신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리하여 아리안주의는 절멸하게 되었는데 성경적 진리 능력으로가 아니라 세상적 권력으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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