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낙스”
하나님의 귀중하고 중요한 도구였던 존 낙스는 1514년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서 가까운 해딩턴에서 태어났다. 낙스의 회심은 스코틀랜드 종교개혁 초기에 나타난 복음의 영향을 통해 변화를 받게 되었는데 낙스는 로마교회 교리를 반대할 뿐 아니라 개혁주의 교리를 확산시킨 위샤트의 설교를 통해 개혁사상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후 낙스는 로마카톨릭과 결별하게 되고 개혁주의로 전향하게 된다.
16세기 초 위클리프의 가르침이 스코틀랜드에 넘쳐나게 되었고, 틴데일의 성경이 글라스고 지방에 유포되기 시작하였다. 박해도 심해지면서 개혁교회와 스코틀랜드 백성들은 수없이 로마 교황권에 대항하여 싸웠다. 또한 16세기 스코틀랜드국교회는 오랜 시간 동안 로마교회의 지배를 받아서 대부분의 사제와 수도사들은 너무나도 무지하여 알파벳도 모르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으며, 교황에게 복종하는 것이 자신들의 구원에 필수적이며, 죄 사함은 미사의 제물을 통해서만 받을 수 있다고 배웠다. 즉, 성경에 바탕을 둔 설교는 사라진지 오래 되었다.
낙스는 세인트앤드루스에 있는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설교자로 청빙을 받았다. 이 때 그의 가슴속에 품었던 꿈은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교회를 세워가는 것과 스코틀랜드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다스려지는 나라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설교 사역하는 세인트앤드루스 성이 프랑스 함대의 공격으로 인해 함락되면서 많은 젊은이들과 함께 낙스 역시 포롤 잡혀갔다. 그 후 그는 19개월 동안 프랑스 갤리선의 노예로 일을 하게 되었다. 낙스는 개신교를 지지하는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6세의 도움으로 노예선에서 풀려나 잉글랜드에서 설교자로 다시 사역을 했다. 먼저 낙스는 개혁교회 예배가 가장 성경적인 예배임을 주장하였고 성경을 근거로 자신이 작성한 예배서를 사용하였다. 또한 그는 공기도서의 사용을 거부하고 교회가 예배와 성례 집행에 있어서 개혁되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특히 성찬식 때 로마 카톨릭의 화체설이나 루터파의 공재설을 부인하고 개혁파의 영적 임재설을 가르쳤다.
그러나 그의 사역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에드워드 6세가 죽고, 로마카톨릭교도인 ‘피의 메리’가 잉글랜드 여왕으로 등극하면서 핍박하였다. 메리의 박해를 피해 제네바에 도착한 낙스는 칼빈을 만나 난민 사역을 하게 된다. 그는 칼빈이 목회하는 제네바 교회 옆 건물로서 칼빈 강당이라 불리는 곳에서 약 200여명의 영국 피난민들을 섬기며 목회하였다. 그리고 낙스는 여러 동역자들과 함께 성경 전체를 새롭게 번역하는 일을 시작하였으며 성경 주석의 집필 과정에도 관여했다. 이것이 바로 1560년 출판된 제네바 성경이다. 1559년 5월, 복음적 교리들과 제네바의 종교개혁 원리를 가슴에 품은 존 낙스는 12년 동안의 힘든 망명 생활을 끝내고 자신의 조국에서 주님의 나팔을 불기 위하여 스코틀랜드로 돌아왔다. 하지만 스코틀랜드에서의 개혁운동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나 낙스는 에든버러 세인트자일스교회의 목회자로 부름받아 칼빈주의적인 개혁을 표방하며 종교개혁운동에 앞장섰으며 그의 설교 주요 주제들은 철저히 개혁주의 신앙과 신학이었다. 마침내 종교개혁 운동은 스코틀랜드에서 제대로 정착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능력의 사자처럼 선포한 낙스의 종교개혁은 아름다운 결실을 맺었다.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교회를 세워가는 것이 중요하다. 존 낙스는 이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개혁주의 신앙과 신학이 핵심이었다. 존 낙스처럼 성경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나는 내 삶을 그리고 내가 사역하는 교회가 얼마나 성경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가를 되돌아보고 다시 성경으로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물론, 존 낙스도 핍박이 있었다.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이 핍박의 길로 자처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기 때문에 핍박을 두려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슴을 능력의 사자처럼 선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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