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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사상 : 존위클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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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클리프

 

종교개혁의 새벽별이라고 불리는 존 위클리프는 독실한 로마카톨릭 신자였다. 대학시절부터 성경을 사랑하고 열심히 연구하였던 위클리프는 동료 학생들로부터 복음박사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위클리프는 134829세에 성경에 흠뻑 마음을 적시어 심령에 큰 변화를 받아 회심하게 된다. 회심 이후 주님을 모르는 불쌍한 영혼들에게 자기가 깨달은 진리를 전하기로 결심하였고, 전 생애를 예수그리스도의 복음 전파를 위해 헌신하였다. 위클리프의 시대의 교회는 로마카톨릭의 잘못된 영향 아래에 있어 사람들에게 별다른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던 안타까운 시기였다. 교황은 스스로를 그리스도의 대리자요, 교회의 머리라고 말하면서 실상은 잉글랜드를 지배하기 위해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었다. , 교황의 권력이 점점 증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교황의 무차별한 권력 남용을 비판하고 반대하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었다. 또한 교회가 갖고 있는 부는 잉글랜드 전 토지의 거의 3분의 1을 소유하고 있었고 수입은 정부의 수입보다 2-3배 많았다. 성직자들은 세속주의에 빠져 소명을 망각한 채 세속적인 것들에 탐닉하였다. 중세로 들어서면서부터 잉글랜드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 왜곡되고 타락한 모습을 보이면서 쇠퇴기에 접어들었고 각 마을 신부들은 7성례와 관련된 결혼식, 세례식 등을 주관함에 열중하였으나 말씀을 강론하는 설교를 전함에는 우선순위를 두지 않았다. 이러한 시대 가운데 위클리프는 부패한 교회의 개혁을 부르짖었던 사람이었는데 성경의 원리에서 벗어난 교황주의와 교황의 세속적 통치권, 교황의 무오성, 성직매매, 교황청의 횡포 및 권력 남용을 비판하였다. 교황에 대해서 교회의 유일한 머리는 인간인 교황이 아니라, 그리스도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교황은 적그리스도라고 주장하였다. 잘못된 구원관 등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일체의 신앙 사상들을 비성경적으로 비판했고 또한 교회 성직자들의 각성을 외쳤다.

 

중세교회는 성경 해석권이 사제들에게 묶여 있었고 성경과 복음의 빛을 가리우고 있었다. 이때 위클리프는 성경의 권위를 보았고 사제의 주된 임무는 하나님과 인간을 중재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성경을 일반 백성들에게 돌려줄 것과 성경의 권위가 교회 안에서 다시 유일한 권위로 세워질 것을 요구하였다. 이 시대에는 모든 사람이 성경을 읽는 것 자체가 금지되어 있었으며, 당시 번역 성경은 라틴어 성경밖에 없었기 때문에 성경읽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라틴어를 배워야 했다. 하지만 위클리프는 성직자와 평신도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스스로 성경을 읽을 권리가 있으며 평신도들도 얼마든지 성경을 이해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성경번역에 대한 비전을 품었다.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 성경을 번역했고 1382년 최초로 영어 번역 성경을 출간하게 되었다. 원어인 히브리어, 헬라어에서 직접 번역한 것이 아니라서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기도 하지만 신구약 성경 전체가 번역된 것은 라틴어 번역 성경 이후 거의 1000년 만에 있는 놀라운 일이었다.

 

존 위클리프를 통해서 성경이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어야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며 동시에 성경의 권위가 교회 안에서 유일한 권위가 되어야 하는 것에 대해서 어느 것과도 바꾸어서는 안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신하게 되었다. 하지만 예전과 같이 한국교회 안에 성경의 권위가 추락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내가 해야 할 것은 내가 맡고 있는 다음세대의 어린이들에게 성경의 권위를 올바로 세워주는 것이다. 그 아이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다시 어둡고 혼탁한 한국교회의 상황 가운데 역사하실 것을 믿는다. 존 위클리프는 성경이 모든 사람에게 전해지기만 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분명한 것은 그 때처럼 성경을 갈급해하는 심령가운데 성경의 말씀, 즉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된다면 분명히 하나님께서 부흥의 대로를 열어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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