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틴데일”
위클리프에 이어서 성경 번역에 목숨 건 틴데일은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한 후 루터주의에 영향을 받은 케임브리지대학으로 옮겨 독일 종교개혁자들의 작품을 연구하였다. 그는 외국어 실력이 탁월하였다. 특히 히브리어, 헬라어에 능통하여 성경을 원어로 읽고 연구하였다. 성경으롱 인해 자신의 삶이 새로워진 틴데일은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잉글랜드와 유럽대륙에서 말씀의 사역자로서, 성경 번역자로서의 사역을 시작하게 된다. 14세기와 마찬가지로 15세기 때에도 중세교회 종교 지도자들은 보이는 외형적 건물인 성당 건축에 온갖열정을 다 쏟았고 교회는 말씀 선포와 복음전도, 교회의 생명력에는 태만하였으며, 교리적으로 점점 퇴보하고 있었다. 당시 잉글랜드 국왕인 헨리 8세는 성경 번역을 금지하였고 왕들의 승낙 없이 성경 번역과 출판을 할 수 없었으며 나라를 떠날 수도 없었다. 성경을 자기 말로 읽는 잦들이 그들에게는 큰 위협이 되었기 때문이다.
틴데일 시대에는 위클리프 영어 번역 성경이 유일한 성경으로서 은밀하게 보급되고 있었다.하지만 사제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로서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있었고 틴데일은 성경없이는 사람들을 진리 안에 굳게 세우는 것이나 진리를 깨닫고 확신을 갖게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틴데일은 암흑에서 자유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보다 더 정확하게 번역 될 수 있도록 라틴어에서 자국어가 아닌 원어에서 자국어로 성경을 번역하려는 일념이 강했다. 성경번역에 대한 틴데일의 열정은 로마카톨릭교회에 대한 공격이었기에 그가 가는 길에는 항상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틴데일은 비밀리에 어느 부유한 상인이 제공한 집에서 성경 번역을 시작했다. 하지만 방해가 뒤따랐고 왕의 승낙없이 영국을 떠나 독일로 건너갔다. 하지만 그곳까지 첩자들을 파송하여 방해하였다. 1524년 독일에 도착한 틴데일은 함부르크에서 비밀리에 영어로 신약성경을 번역하였고 그 후 1526년 보름스에서 신약성경 6천부가 인쇄되었다. 그 후 틴데일은 안트베르펜으로 이주하여 모세오경과 요나서, 여호수아와 역대하를 번역하였다. 하지만 모든 구약성경을 완결하지는 못했지만 일부를 번역하는데 성공하였다. 번역한 성경은 곡물을 실은 잉글랜드 행 배 안에 다른 상품처럼 위장하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성경을 반입하였다. 하지만 이를 알게 된 성직자들은 항구를 조사하여 성경을 찾아냈고 찾아내는 즉시 성경을 불태웠다. 런던 감독은 많은 돈을 주고 신약성경을 대량으로 사서 소각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그 돈으로 더 많은 성경을 찍어 낼 수 있었다. 성경을 잃어버린 중세시대에 틴데일은 목숨을 다해 성경을 그들에게 회복시켜 주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핍박받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졌다. 틴데일 성경의 책임 운송을 책임졌던 동료들이 순교를 감당해야 했다. 결국 틴데일도 성경을 번역했다는 죄목으로 극심한 고통을 당하였고 빌보드에서 화형에 처해졌다.
성경에 목숨을 건 틴데일은 위클리프보다 더 중요한 인물로 손꼽힌다. 그 이유는 원어에서 바로 영어로 직역했기 때문이다. 틴데일은 목숨을 바칠 정도로 성경 번역에 힘을 썼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틴데일의 가슴 속에 품은 분명한 비전 때문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분명한 비전을 품은 사람, 목숨까지 내놓을정도로 준비된 사람을 사용하신다. 나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죽기까지 순종할 각오가 되었는가에 대한 질문이 주어진다면 말로는 가볍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아직 나에게 영광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더 공부하며 더 성경보고 기도하며 준비해야 할 것임이 분명하다. 틴데일처럼 목숨까지 내놓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바울의 말처럼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되도록 기도로 준비하고 사모할 것이다. 위클리프의 성경보다 더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하게 전달하려던 틴데일의 모습을 통해서 더 분명한 하나님나라를 전하도록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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