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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사상 : 로버트 머레이 맥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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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머레이 맥체인

 

1813년에 에든버러에서 태어난 맥체인은 14세가 되던 해 애든버러대학에서 고전문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1,2년 동안 세상적 쾌락과 즐거움에 빠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형의 죽음으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매우 친하게 지낸 형이 어린 나이에 죽게되면서 맥체인의 영혼을 강하게 흔들었고 영적인 잠에서 깨우기 시작하였는데 그의 세상적이고 육적인 생활에 큰 충격이 되었다. 그 때부터 맥체인은 진지해지기 시작하였으며 점점 세상적인 즐거움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맥체인이 29세의 짧은 생애를 살 것을 하나님은 이미 알고 계셨으며 주관하고 계셨다. 그래서인지 맥체인의 회심과 목회자로의 부르심은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맥체인은 그의 삶과 사역에 가장 큰 영향력을 준 멘토 토마스 찰머스를 만나게 되고 열정적이며 경건하며 복음주의적 칼빈주의를 따르고 있었던 칼빈주의자 찰머스를 보면서 많은 것들을 배운다.

 

1835년 목사 안수를 받은 맥체인은 두니페이스에서 1년동안 사역을 하게 된다. 그 후 던디의 성베드로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하였고 대부분의 회중들은 단지 교회만 다니는 형식적인 사람들이었다. 던디에서 처음 몇 달 동안 맥체인의 사역은 매우 힘들었지만 그는 성령께서 구원을 이루시는 사역 가운데 가장 먼저 오는 것은 죄에 대한 인식과 죄책감이라고 믿었다. 사람들이 그들의 영적인 죽음과 타락에 눈을 떠야 성령께서 십자가를 그들의 마음에 보여 줄 수 있다는 확신 가운데서 맥체인은 늘 죄와 심판에 대하여 설교하였다. 성령께서 역사하여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설교를 통해 영적으로 깨어나고 살아나게 되었다. 또한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모임은 매주의 기도모임이었다. 기도를 위해 정기적으로 모이는 것을 매우 강조했는데 이런 기도모임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맥체인은 심방사역을 하였다. 그는 보통 하루에 20가정을 심방하였고, 그가 회중들을 만나러 나갔을 때에는 열정과 사도요한의 사랑이 그의 가슴에 담겨 있었다.

 

영혼을 향한 열정만큼 맥체인의 삶을 풍성하게 한 것은 그의 묵상과 경건 생활이다. 매일 아침 630분에 일어난 그는 2시간의 기도와 묵상 속에서 보냈다. 또한 맥체인은 사역 말기에 성도들을 위해 성경읽기표를 만들었다. 그 읽기표에 따라 성경을 읽으면 1년에 구약한번 신약과 시편은 두 번 통독하도록 되어있다. 마틴 로이든 존스는 54년동안 맥체인의 성경읽기표에 따라 성경을 읽었다. 그리고 맥체인은 광범위한 독서가였다. 신앙의 거인들의 전기를 읽으면서 그들의 경건한 삶의 원칙들을 자신의 삶에 적용함으로써 영적 성장에 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 1838년 말쯤 쉼 없는 사역 때문에 그의 건강은 매우 악화되어서 던디를 떠나 애든버러로 가서 쉬게 되었다. 그곳에서도 그는 자신의 양들을 기억하며 목회서신들을 그들에게 썼다. 1839년 맥체인은 건강을 회복하고 성베드로교회로 다시 돌아왔다. 매주 열리는 기도모임에 맥체인은 번즈와 함께 강단에 섰을 때 빈자리가 하나도 없을만큼 교회가 꽉 찬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많은 청중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다.

 

맥체인은 죄와 심판이 대한 설교를 많이 했다. 나는 과언 많은 청중들을 앉혀놓고 죄와심판에 대해 얼마나 강력하게 선포할 수 있을것인가를 생각하보게 되었다. 정말로 힘들것 같다. 말은 할 수있지만 스쳐지나가며 말할것같다. 그러나 나는 청교도들을 보면서 복음의 확신이 있다먼 죄와 심판을 강하게 말할수있다고 생각하게되었다. 청중이 듣고 싶은 말만 하는 설교자가 되기보다는 청중이 듣기 싫어하는 것을 듣고 변화를 시키는 강한 설교자가 되어야겠다. 맥체인은 그 일을 자기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하신다는 것을 알고있었고 성령께서 분명허게 그의 설교깨마다 임하셔서 일하셨다. 나가 하려고 하지말고 성령이 할 수 있도록 성령이 변화시킬수 있도록 설교의 공간을 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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