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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인물 17 : 예후, 히스기야, 요시야, 아비새, 여호사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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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예후 (북이스라엘 10대 왕)
 
1. 인적 사항
예후는 ‘그는 여호와시다’라는 뜻. 북왕국 이스라엘의 제 10대 왕이며, 예후 왕조 창시자.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왕하9:2).
여호람 휘하의 군대 장관이었다(왕하 9:25).
④ 엘리사에게 기름 부음 받음(왕상 19:16).
 
2. 시대적 배경
  B.C.841-814년까지 약 28년간 북왕국의 제 10대 왕으로 통치한 자. 당시 북왕국과 남왕국은 아합 때부터 서로 동맹 관계에 그것은 외적의 침입을 공동적으로 대처한다는 목적에서였다.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잦은 아람의 침입으로 남북 왕국은 모두 그 세력이 급격히 약화되어 있었다. 따라서 보다 강력한 통치권자가 절실히 요청되던 때에 예후는 연약해진 아합 왕가와 함께 당시 동맹 관계에 있던 남유다의 아하시야 왕을 처형함으로써 강력한 정부를 구축하였다.
 
3. 주요 생애
 출생
       ―
      ―
 아합의 군대 장관
       ―
  왕하 9:25
 엘리사의 생도에게 기름 부음 받음
    B.C.841년
  왕하 9:1-10
 아합 가문의 심판의 명을 받음
        〃
  왕하 9:7-10
 왕으로 추대됨
        〃
  왕하 9:13
 유다 왕 아하시야 살해
       ―
  왕하 9:4-24
 이세벨 살해
       ―
  왕하 9:33
 아합의 왕자 70인을 살해
       ―
  왕하 10-6-8
 아합 권속 진멸
       ―
  왕하 10:11
 유다 왕 아하시야의 형제 42인 살해
       ―
  왕하 10:12-14
 여호나답의 도움 받음
       ―
  왕하 10:16
 바알 숭배자 진멸
    B.C.835년 
  왕하 10:18-25
 바알 산당 훼파
       ―
  왕하 10:26
 금송아지 숭배
       ―
  왕하 10:29
 아람 왕하사엘의 침공 받음
       ―
  왕하 10:32,33
 죽음
    B.C.814년
  왕하 10:35
 
4. 성품
남북 왕국에 속한 왕족들을 철저하게 진멸할 만큼 대담한 자(왕하 9:14-10:14).   
아합 가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수행하는 과정을 볼 때 너무 잔인하고 포악한 자(왕하 9:33,34).
자신의 반역 소식이 왕궁에 도달되기 전에 병거를 황급히 몰아 왕궁에 쳐들어 간 것을 볼 때 자신의 하고자 하는 일에 열정적인 자(왕하 9:20;10:16).
④ 멸시를 받을지라도 이를 분개하지 않고 일을 진행시킬 만큼 사고가 냉철한 자(왕하9:31).
⑤ 바알 숭배자를 진멸하였을지라도 자신은 금송아지를 숭배한 것을 볼 때 위선 되고 이중적인 신앙을 소유한 자(왕하 10:29-31).
 
5. 구속사적 지위
- 바알 숭배와 여호와의 예언자들을 죽인 오므리 왕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도록 선택받음.
 
6. 평가 및 교훈
예후는 여호와의 예언자들을 죽이고 또 바알을 숭배하며 극도로 타락했던 아합 가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기 위해 선택받았다(왕하9:7-10).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행한 대로 반드시 보응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며, 이를 위해서는 때에 따라서 악한 자라 할지라도 공의를 선포하기 위한 도구로서 사용하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공의 앞에서 하나님만이 전 역사의 주관자요 절대자 되심을 깨닫게 된다.
 
예후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바알 숭배자들을 진멸했을지라도 자기 자신은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이중적인 신앙태도를 지녔다(왕상10:29). 이로 보아 하나님의 뜻대로 남북 왕조를 심판하고 바알 숭배자들을 진멸한 그의 행동은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순종이 아니라, 자신의 야망과 영리가 계산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오늘날에도 자신의 영리를 계산한 채 종교 생활에 힘쓰는 위선 된 성도들이 있다. 진정 당신은 계산된 이익의 추구가 아닌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신앙생활에 힘쓰고 있는가?

 

82-히스기야 (신앙을 회복시킨 남유다 13대 왕)
 
1. 인적 사항
히스기야는 ‘여호와는 나의 힘’이라는 뜻.
유다 왕 아하스와 아비야 사이의 아들(대하29:1).
25세에 유다 제 13대 왕으로 즉위, 25년간 통치(왕하 18:1,2).
④ 아들 므낫세가 왕위를 계승(왕하 20:21).                   
⑤ 그리스도의 조상(마 1:9).
 
2. 시대적 배경
  국내적으로는 극도의 종교적 타락으로 병들고, 대외적으로는 앗수르에 의해 위협을 받던 시기인 B.C.728년부터 B.C.687년까지를 배경으로 한다. 당시는 B.C.722년 앗수르 왕 살만에셀 5세에 의해 북왕국이 멸망함과 동시에 그 여세를 몰아 앗수르가 남유다를 끊임없이 위협하는 등 국내외적으로 위기감이 한참 고조되어 있던 때였다.
 
3. 주요 생애
 출생
      ―
     ―
 섭정 왕으로 등극
    B.C.728년
 왕하 18:2
 단독 통치 실시
 25세, B.C.715년
 왕하 18:13
 성전 수리와 종교개혁
      ―
 대하 29:3-36
 우상 제단 제거
      ―
 왕하 18:4
 유월절 준수
      ―
 대하 30:1
 블레셋 정복
      ―
 왕하 18:8
 앗수르의 1, 2차 침공
      ―
 왕하 18:9-19:34
 성 안에 수로 건설
      ―
 왕하 20:20
 죽을 병에 걸림
    B.C.701년
 왕하 20:1
 기도 응답으로 생명을 15년간 연장 받음
       〃
 왕하 20:2-11
 생명 연장 감사의 글을 씀
       〃  
 사 38:9-22
 바벨론 사신에게 유다의 보물을 자랑함
       〃
 왕하 20:12-15
 이사야의 남유다 멸망 예언
       ―
 왕하 20:16-21
 죽음 
 54세, B.C.687년
 왕하 20:20,21
 
4. 성품
우상 숭배에 빠졌던 부친과는 달리 하나님께 인정받을 만큼 여호와만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정직히 행한 자(왕하 18:3-6).
예루살렘 성전을 수리하고, 우상 숭배의 단을 제거하며, 유월절을 다시 제정할 만큼 과감한 개혁을 시도한 결단력 있는 자(왕하 18:4;대하29:3).
앗수르 침공으로 위험에 처했을 때, 또 자신이 병들었을 때 기도함으로 해결함을 받을 만큼 전적으로 기도에 힘쓴 자(왕하 19:15;20:2,3).
④ 왕의 신분으로써 선지자 이사야 에게 모든 것을 의논하며 기도를 요청할 만큼 겸손한 자(왕하 19:1-4).
⑤ 앗수르의 침입 등 어려운 상황에서도 성안에 수리 시설을 갖춰 적의 공격에 대비할 정도로 침착하고 세밀한 지도력을 겸비한 자(왕하 20:20).
⑥ 바벨론 사자들에게 유다의 보물을 공개하며 자랑한 것을 볼 때 허영심 있고 경솔한 자(왕하 20:15).
 
5. 구속사적 지위
남유다의 제13대 왕으로서 하나님 앞에 정직히 행한 자(왕하 18:3-6).
죽을 병에 걸렸으나 기도함으로 생명을 15년 연장 받은 기도의 사람(왕하 10:6).
기도 응답으로 해 그림자가 십도 물러선 이적을 체험한 자(왕하 20:11).
④ 생명이 연장되었으나 교만과 허영으로 그 시간을 살아감으로써 바벨론 침입의 계기를 만든 자(왕하 20:12-19).
 
6. 주요 업적
우상 숭배를 척결하고 선전을 청결케 함(대하 29:6-36).
성안에 수로, 곧 실로암 굴(the Siloam Tunnel)을 건설함(왕하 20:20).
유월절을 준수하고, 14일 동안 남․북 이스라엘이 함께 기쁨을 누리도록 함(대하 30:1-23).
④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를 의지하다가 앗수르에게 망한(17:4-6) 것을 보면서 반 앗수르 정책, 곧 정치적 개혁 운동을 시행함(왕하 18:7,8).
⑤ 앗수르 침략의 위협 속에서도 블레셋을 쳐서 지경을 넓힘(왕하 18:8).
⑥ 기도로써 앗수르의 침입에서 나라를 보호하고 생명을 연장 받음(왕하 19:14-19).
⑦ 교만해져서 범죄한 후 즉시 회개함(대하 32:26).
 
7. 실수
바벨론의 사자에게 자기 나라의 보물고와 무기고를 다 보여줌(왕하 20:12-15).
아들 므비보셋에게 바른 신앙을 심어주지 못함(왕하 21:2).
 
8. 평가 및 교훈
히스기야는 부왕 아하스의 타락한 정치의 전철을 밟지 않고 왕으로서 먼저 종교 개혁을 과감하게 실행하여 국가적인 신앙의 회복을 꾀하였다. 이는 물질문명의 노예 상태에 빠져있는 현대인들에게 주위의 여러 악한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지켜 주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심을 잘 보여 준다. 이세대의 영향을 따르지 말고, 오직 정결한 주의 자녀답게 신앙자세를 지켜나가야 하겠다(롬 12:2).
 
히스기야는 국가 존망의 위기에 있어서 겸손하게 이사야 선지자에게 기도를 부탁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였고(왕하19:4;사36:4). 또 자기 자신에게 어려움이 닥쳤을 때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기도하는 신앙을 나타내 보였다(대하32:26). 참으로 히스기야는 기도함으로써 앗수르 군을 격퇴하였고, 해 그림자가 십도 물러서는 초자연적 현상을 목도하였으며, 그 생명이 15년이나 연장되었다. 이처럼 어려움이 닥쳐왔을 때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겸손하게 하나님께 나아가 회개하며 기도하는 신앙의 모습은 하나님을 하나의 신앙 수단으로 삼으려는 현대인에게 좋은 귀감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도 매사에 하나님께 엎드려 그의 긍휼을 간구하는 자가 되자.
 
히스기야는 바벨론 왕 부로닥발라단이 위문의 사신들을 보냈을 때 교만과 허영심에 의해 그들에게 군기고 와 모든 보물을 공개해 보이며 자랑했다(대하 32:25). 즉 당시의 정황으로 보아 히스기야가 그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는 자신이 소유한 금과 은과 보물을 자랑하면서 세속적인 방법으로 나라의 부강을 과시하려 하였던 것이다. 이는 성도가 신앙생활 할 때에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기보다는 세상 나라의 부귀를 앞세워 생각할 때 교만의 올무에 걸리게 됨을 잘 보여 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의 형편이 나아졌다고 해서 그러한 형편과 명성 때문에 시험 들지 않도록 더욱 겸손히 하나님의 의를 구해야 하겠다(마6:33).
 
9. 핵심 성구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왕하 19:5).

 

83-요시야 (남유다의 마지막 개혁자)
 
1. 인적 사항
요시야는 ‘여호와께서 도와주심’이라는 뜻.
남유다 제16대 왕, 8세에 즉위하여 31년간 통치(왕하 22:1).
므낫세 손자, 유다 왕 아몬의 아들(왕하 21:24).
④ 모친은 보스갓 아다야의 딸인 여디다(왕하 22:1).
⑤ 아들로는 요하난과 여호야김과 시드기야, 살룸이 있음(대상 3:15).
⑥ 그리스도의 조상(마 1:10).
 
2. 시대적 배경
  유다 왕국의 마지막 시대로 접어든 B.C.640년경부터 왕국 분열 후 유다 역사상 가장 부흥했던 시기인 B.C.609년까지를 주 활동 배경으로 한다. 당시의 대외 정세는 남유다를 계속하여 위협하던 앗수르의 세력이 매우 약화된 때였다. 즉 앗수르는 무리한 대외정복 정책으로 국력을 많이 낭비하게 되었고 급기야 B.C.612년에 바벨론에 의한 수도 니느웨 城 함락(陷落)으로 멸망한다. 그리고 신흥 바벨론이 앗수르를 제치고, 새로운 국제 질서의 주도권을 잡고 일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세력이 활발하여지는 요시야 왕 말기부터였다. 그러므로 8세에 왕에 오른 요시야 왕 때에는 앗수르의 힘은 약화되었고, 아직 바벨론은 대외적으로 큰 영향을 행사하지 못하던 때였다. 그러므로 요시야 통치 초기의 유다 왕국은 평화로운 중에 여호와의 신앙을 제정할 수 있었다.  
 
3. 주요 생애
 여로보암 때에 출생이 예언됨
      B.C.926년경    
   왕상 13:1,2
 출생
      B.C.647년
       ―
 부왕 아몬이 암살 당함
    8세, B.C.640년
   왕하 21:23
 왕이 됨
          〃 
   왕하 21:24
 1차 종교 개혁 실시
   20세, B.C.628년
   대하 34:3
 성전 수리
   26세, B.C.628년
   왕하 22:3-6
 율법 책 발견과 대각성
          〃
   왕하 22:8-13
 백성들과 언약 체결
          〃
   왕하 23:1-3
 대대적인 종교 개혁 단행
          〃
   왕하 23:4-15
 유월절을 지킴
          〃
   왕하 23:23
 므깃도에서 전사
          〃
   왕하 23:29
 예루살렘에서 장사됨
          〃
   왕하 23:30
 
4. 성품
8세의 어린 나이에 왕으로 즉위한 뒤 선왕들과는 달리 다윗의 율례를 모범으로 삼아 그 율례대로 선정을 베푼 것을 볼 때 어질고 신실한 자(왕하 22:2).
율법서를 발견한 후 말씀을 읽으며 옷을 찢고 눈물로 회개할 만큼 겸손하고 순종적인 자(왕하 22:10-13).
백성들과 더불어 여호와 앞에서 말씀에 순종했다는 언약을 맺을 만큼 하나님을 철저하게 의뢰하는 자(왕하 23:3).
④ 대대적인 회개 운동 후에 우상 숭배의 제단과 그 형상, 또 이를 주관하는 자들까지도 제거할 만큼 결단력 있고 실천적인 자(왕하 23:4-15).
⑤ 하나님 말씀에 굳게 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을 만큼 가치관이 확고한 자(왕하 22:2).
⑥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자신의 판단으로 전쟁에 참여한 것을 볼 때 일면 경솔한 자(왕하 23:29).
 
5. 구속사적 지위
국가적으로 대대적인 신앙 개혁운동을 주도한 남유다 제16대 왕(왕하 23:4-15).
신앙적 암흑기에 여호와 예배 의식을 회복하고, 백성들과 더불어 하나님의 언약을 갱신한 지도자(왕하 23:1-3).
이스라엘 분열 왕국 이후 유다 역사상 최대의 종교적 부흥기를 꾀한 왕(왕하 23:25).
 
6. 주요 업적
성전을 깨끗이 수리하고, 이 때 율법 책을 발견함(왕하 22:3-8).
성전에서 발견한 율법 책을 읽어 자신뿐만 아니라 우상 숭배에 빠져있던 백성들로 하여금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돌아오게 함(왕하 22:8-19).
백성들과 더불어 하나님 앞에서 언약을 갱신함(왕하 23:1-3).
④ 남방만 아니라 북방 이스라엘까지 온 이스라엘의 우상을 제거하고 정결케 함(대하 34:3).
⑤ 이스라엘 역사에서 사사 시대 이후 처음으로 모세의 율법을 따라 유월절을 지킴(23:21-23).
 
7. 실수
  애굽 왕 바로느고를 통한 하나님의 경고를 듣지 않고 끝까지 므깃도 전투를 감행하다 죽임을 당함(대하 35:20-24).
 
8. 평가 및 교훈
요시야 왕은 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을지라도 선왕의 악행을 따르지 않고, 오직 다윗의 본을 따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침 없이 하나님만을 섬겼던 현군이었다(대하34:1-7). 곧 그는 즉위 후 먼저 하나님의 성전을 수리하고, 또 온갖 이방 신을 다 제하여 버렸을 뿐만 아니라, 온 나라의 하나님의 율법을 선포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 세대에 물들지 말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살아가야 할 우리에게 결단력 있고 진취적인 신앙의 기상을 잘 보여준다. 당신에게도 이러한 신앙의 결단과 행동이 살아있는가? (롬12:2).
 
요시야 왕은 말씀에 대해 순종하겠다는 결심과 함께, 나아가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았다(왕하 23:21-25). 이러한 요시야의 모습은 말씀에 대한 지식은 많지만 그 말씀대로 실천하지 않는(약 2:14) 오늘날 많은 성도들에게 참 신앙이 어떠한 것인가를 잘 보여 준다. 실로 우리도 그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다.
 
요시야는 왕으로서 권위를 내세우는 개혁이 아닌, 자신부터 말씀에 근거하여 철저히 변화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방 우상 숭배에 젖어 있던 백성들을 회개시키고 국가적인 종교 개혁을 단행할 수 있었다(왕하 22:11-13). 이처럼 성도들도 먼저 겸손하게 자신을 말씀 앞에 복종시켜 변화하는 가운데 교회와 사회를 예리한 말씀으로 변화시켜 나아가야 한다(히 4:12). 실로 요시야가 오직 말씀에 준거하여 모든 개혁을 일으켰듯이 우리 역시 말씀에 근거하여 변화하는 모습과 노력이 있을 때 진정 이 사회가 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 경배드릴 수 있는 것이다.
 
9. 핵심 성구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향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임금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왕하 23:25).

 

84-아비새 (용감한 다윗의 용사)
 
1. 인적 사항
아비새는 ‘나의 아버지는 이새’라는 뜻. 
다윗의 이복 누이 스루야의 둘째 아들(대상2:15,16)
 
2. 시대적 배경
  B.C.1020년 경 사울로 인한 다윗 도피 시절부터, B.C.971년 다윗 통치 말기까지 다윗의 30인 용사 가운데 한 사람으로 활약한 인물이다.
 
3. 주요 생애
 출생
          ―
          ―
 다윗의 용사가 됨
          ―
    대상 11:20
 십광야에서 사울을 죽이려함
          ―
    삼상 26:8,9
 귀순자 아브넬 살해
          ―
    삼하 3:30
 암몬과 아람족 징벌
          ―
    대상 19“15
 압살롬의 난을 평정
          ―
    삼하 18:2
 블레셋 전투에서 다윗의 생명을 구함
          ―
    삼하 21:15-17
 죽음
          ―
          ―
 
4. 성품
다윗의 피난 시절부터 통치 말기까지 그와 동고동락한 것을 볼 때 의리 있고 충성된 자(삼상 26:6).
300명의 적을 단숨에 물리친 것을 볼 때 매우 용감한 자(대상 11:20).
귀순한 아브넬을 동생의 원수를 갚고자 살해한 것으로 보아 분별력이 부족한 자(삼하 2:18-3:30).
④ 기름부음 받은 사울 왕을 서슴없이 죽이려할 만큼 경솔한 자(삼상 26:8).
⑤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목숨을 걸고 다윗을 구한 것을 볼 때 책임감이 강하고 헌신적인 자(삼하 21:15-17).
 
5. 구속사적 지위
목숨을 걸고 다윗을 섬긴 다윗의 가장 용맹스러운 용사(삼하 21:15-17). 즉 주의 군병된 성도들이 어떠한 자세로 주를 위해 살아야 할 것인가를 행동으로 보여준 자.
불의 한 방법으로 동생의 원수를 갚음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악행하는 자라고 책망들은 자(삼하 3:17-30).
 
6. 주요 업적
다윗의 도피 시절부터 통치 말기까지 다윗에게 충성함(삼상 26:6).
다윗의 생명을 구함(삼하 21:17).
 
7. 실수
사사로운 정에 얽매여 귀순한 아브넬을 모함․살해함(삼하 3:22-30).
기름부음 받은 사울 왕을 죽이려함(삼상 26:8,9).
 
8. 평가 및 교훈
아비새는 다윗이 도피하던 시절부터 늘 힘써 그를 섬겼다. 더욱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다윗의 생명을 구하기까지 충성한 그의 희생과 용맹은 십자가 군병 되어서 예수를 따라가는 우리 모두가 갖춰야 할 기상이다(딤후 4:7). 
 
아비새는 용맹했으나 일면 분노를 자제하지 못함으로써 많은 실수를 저지르게 되었다. 이처럼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일 때 우리는 불의하고 비겁한 방법을 마치 정의인양 착각하게 된다. 마음을 다스려 매사를 성급히 분내지 말고 무엇이 바른가를 분별하도록 하자(잠 16:32).

 

85-여호사밧 (개혁자 남유다 제 4대 왕)
 
1. 인적 사항
여호사밧은 ‘여호와께서 심판하셨다’라는 뜻
남왕국 유다의 제 4대 왕으로 25년간 재위(대하 20:31).
선왕 아사와 실히의 딸인 아수바의 아들(대하 20:31).
북왕국 아합 왕과 사돈을 맺음(왕하 8:18,26).
 
2. 시대적 배경
  B.C. 872-848년까지 통치. 북이스라엘 왕 아합, 아하시야, 여호람과 동시대의 인물이다. 제 3대 왕 아사 때까지 만해도 남북 왕국은 계속 긴장 관계에 있었으나 여호사밧 때부터는 남북 왕국 사이의 관계가 상당히 우호적이 되었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당시 북쪽에서 아람의 세력을 크게 확장하여 위협해 오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공동 대처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남북간의 동맹 관계가 상당히 우호적이 되었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당시 북쪽에서 아람이 세력을 크게 확장하여 위협해 오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공동 대처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남북간의 동맹 관계가 여호와를 전적 의뢰하는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악한 왕에 의지한 결과라는 점에서 선지자 예후는 여호사밧 왕을 크게 책망하였다(대하 19:2).
 
3. 주요 생애
 출생 
         ―    
        ―
 등극 
    B.C. 872 년
   왕상 21:41
 국방력 강화
         ―        
   대하 17:1.2
 종교개혁 실시
         ―
   대하 17:3-6
 교육 사업 착수
         ―
   대하 17:7-9
 요새와 국고성 건축
         ―
   대하 17:10-19
 아합과 결혼 동맹 체결
    B.C. 853 년   
   대하 18:1-3
 아합과 동맹, 길르앗 라못 전투 참여 
         ―
   대하 18:2-19:3
 사법, 행정 조직 정비
         ―
   대하 19:4-11
 모압과 암몬 연합군의 격퇴
         ―
   대하 20:1-30
 아하시야와 상업 동맹 체결
         ―
   대하 20:35-37
 죽음
    B.C. 848 년
   대하 21:1
 
4. 성품
모세 율법에 따라 사법 제도와 통치 체제를 정비한 것으로 보아 정치적 역량이 뛰어난 자(대하 17:6-9).
국제 정세를 파악하여 성읍에 수비대를 주둔하고, 평화시에 방위수단을 구축한 것으로 보아 지혜롭고 준비성이 뛰어난 자(대하 17:1,2).
아합의 권유를 들었을 때 먼저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한 것이나 위기 중에 여호와의 도와주심을 확신한 것으로 보아 여호와를 의뢰하는 신앙을 가진 자((대하 18:4;20:1-25).
자국의 안정을 위해 북이스라엘과 결혼 동맹을 맺은 것을 볼 때 일면 신앙보다 정치․외교를 앞서 생각한 자(대하 18:1;20:35-37).
미가야 선지자의 예언을 듣고도 무리하게 길르앗 라못 전투에 참전했다가 패한 것으로 보아 고집 있고 경솔한 자(대하 18:12-34).
 
5. 구속사적 지위
모세 율법에 의해 사법 제도를 정비함으로써 신정 국가로서 남유다 왕국의 면모를 새롭게 한 자.
북왕국과의 결혼 동맹과 길르앗 라못 전투에 동맹참전한 일로 인한 여호사밧에 대한 선지자 예후의 책망에서 보여주듯(대하19:2), 악한 자와의 동맹이 믿음의 의로운 길로 가야할 신자들에게는 치명적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영적 교훈을 보여준 자.
 
6. 주요 업적
전면적인 종교 개혁을 실시(왕상 22:46;대하 17:3-6).
유다의 전 국토를 요새화하고 국방력을 강화(대하 17:1,2).
교육 사업과 사법 제도를 정비(대하 17:7-9;19:5-11).
④ 모압과 암몬 연합군의 침략을 하나님의 도움으로 이겨냄(대하 20:1-37).
 
7. 실수
산당을 페하지 않음(대하 20:33).
배교자요 우상 숭배자인 북이스라엘의 아합, 아하시야 왕과 동맹을 맺음(대하 18:1).
 
8. 평가 및 교훈
이방 연합군의 침입이라는 대위기 앞에서 여호사밧은 오직 하나님의 구원을 요청하는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이 절대 절명의 위기로부터 유다를 구원시켰다(대하 20:3-30). 이처럼 어떠한 곤경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여호와께서 우리에 구원자 되심을 확고히 믿는 자에게는 그가 분명 도우시는 손길로 함께 하심을 알 수 있다(삼상 26:24;욥 5:19;요 16:33).  
 
여호사밧은 극도한 우상 숭배자 아합과 동맹을 맺는 일생일대의 실수를 범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실한 왕이라는 인정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선견자 예후의 책망을 들었을 때 즉시 회개했기 때문이다(대하 18:28-19:3). 이와 같이 우리도 혹 연약함으로 인해 죄를 짓게 되더라도 다른 자를 통해 하나님의 책망을 들을 때에 즉시 하나님 앞에 무릎 꿇을 수 있는 겸손함을 가져야 할 것이다.
 
여호사밧이 아합과 동맹을 맺었을 때 아합은 거짓 선지자들을 통해 길르앗 라못을 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호사밧을 충동하였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끝까지 이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했던 것을 우리는 볼 수 있다(대하 18:1-27). 이와 같이 우리도 어떤 일을 결정함에 있어서 사람들을 의식하기보다는 먼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고자 노력하는가?
 
9. 핵심 성구
  “여호사밧이 예루살렘에 거하더니 나가서 브엘세바에서부터 에브라임 산지까지 민간에 순행하며 저희를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게 하고”(대하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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