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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인물 15 : 솔로몬, 여로보암, 르호보암, 아사, 오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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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솔로몬 (이스라엘 최고의 영광과 지혜의 왕)
  
1. 인적 사항
솔로몬은 ‘평화로움’, ‘화평함’ 이란 뜻.  
통일왕국 이스라엘의 제3대 왕(왕상 2;12).
‘여디디야’(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로도 불림(삼하 12:24,25).
④ 예루살렘 출생(대상3:5)
⑤ 다윗과 밧세바 사이의 두 번째 아들(삼하12:24;대상3:5)..
⑥ 이방 여인과도 결혼, 700명의 아내와 후궁을 취함(왕상11:3).
⑦ 르호보암이 왕위를 계승(왕상 11:43).
 
2. 시대적 배경
  이스라엘이 정치․경제․문화․군사적으로 크게 안정을 누리던 시기로, 다윗 왕의 뒤를 이은 B.C.970년부터 B.C.930년까지를 주 활동 배경으로 한다. 솔로몬이 활동할 당시 이스라엘은 선왕 다윗의 활발했던 정복 사업 덕택에 근동 지역에서 명실상부한 최강대국으로 군림했었다. 당시 애굽은 제 21왕조 시대로서 국내적 혼란으로 말미암아 그 세력이 매우 미약하였고, 또 앗수르도 국내의 혼란과 함께 아직 제국으로서의 세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그리고 팔레스틴 지역의 대부분의 약소국가들은 이스라엘의 속국으로서 조공을 바치고 있었다. 이러한 때에 솔로몬은 정치, 경제, 문화적 전성기를 주도하였으며 활발한 외교와 무역 사업으로 이스라엘의 국내적인 지위를 한층 드높였다. 이 같은 배경 하에서 그는 거대한 성전과 왕궁 건축, 그리고 기타 건축 사업들을 훌륭히 수행해 냈다. 그러나 그러한 정치 경제적 기반 위에서 모든 건축 사업을 실시했으나 무리한 백성들의 부역 동원으로 솔로몬은 많은 원성을 사기도 했으며, 그 영향은 그 아들 르호보암 때에 가서 본격적으로 표출되게 되었다.
 
  한편 솔로몬이 그의 통치 후반기에 이방 우상인 아세라 여신과 암몬 족속의 몰록과 밀곰을 섬기는 우상 숭배로 타락하게 됨으로써 이스라엘은 영적 타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왕상11:6-8). 이와 같이 경제․사회․문화․국방의 면에서는 솔로몬의 통치 40년 동안 이스라엘 최고의 영광과 부와 권위를 누렸지만 영적으로 타락의 길로 들어감으로써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급기야는 그 아들 대에 가서 이스라엘이 두 나라로 갈라지게 되는 위기를 자초하게 된다.  
 
3. 주요 생애
 출생
     B.C.990년  
   삼하 12:24
 예루살렘 궁전에서 성장
         ―
   대상 3:5
 나단 선지자의 신앙 교육을 받음
         ―
   삼하 12:25
 왕위 계승
   20세, B.C.970년 
   왕상 1:43-47
 반역한 아도니야를 사면함
          "
   왕상 1:49-53
 아비 다윗의 임종을 맞음
          “  
   왕상 2:10-12
 성전건축의 유언을 받음
         ―
   대상 22:6-19
 왕권을 강화함
         ―
   왕상 2:25-46
 바로의 딸과 결혼
         ―
   왕상 3:1
 1천번제 드림
         ―
   왕상 3:4
 하나님께 지혜를 약속 받음
         ―      
   왕상 3:5-15
 관직과 행정구역 정비
         ―
   왕상 3:16-28
 국방력 강화
         ―
   왕상 4:26
 7년간 성전 건축
    B.C.966-959년
   왕상 5,6장
 법궤 안치식 거행
   31세, B.C.959년
   왕상 8:1-66
 13년간 왕궁 건축
   B.C.959-946년
   왕상 7:1;9:1
 무역과 상업을 장려
         ―
   왕상 10:11-29
 스바 여왕의 방문
         ―
   왕상 10:1-13
 많은 이방 여인과 결혼      
         ―  
   왕상 11:1-3
 우상 산당을 건축
         ―
   왕상 11:4-8
 하나님의 징계 경고받음
         ―
   왕상 11:9-13
 하닷의 반역 
         ―
   왕상 11:14
 르손의 반역 
     B.C.938년  
   왕상 11:23
 여로보암의 반역
         ― 
   왕상 11:26-40
 죽음
   60세,B.C.930년
   왕상 11:43
 
 
 
 
4. 성품
 아도니아의 소원에 담긴 간계를 파악하고 그를 처형한 것을 볼때 현명하고 결단력이 있는 자(2:22-25).
 백성들을 통치하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린 것을 볼 때 하나님 중심에 신앙관을 가진 자(왕상 3:4). 
 ③ 하나님께 다른 여러 가지를 구하지 않고, 왕으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할 만큼 사명감이 투철하고 겸손한 자(왕상3:5-13).
 ④ 한 아기를 둘러싼 두 여인의 친모 주장을 탁월한 기지로서 해결하고, 또 다른 나라의 통치자들이 그 지혜를 배우러 왔을 정도로 뛰어난 지혜를 소유한 자(왕상3:16-28).
 ⑤ 다윗 때에 이루지 못한 이스라엘의 숙원 사업인 바 성전과 왕궁 건축을 20년에 걸쳐 완성한 끈기 있고 주도면밀한 자(왕상 9:10).
 ⑥ 주변 국가와 우호를 다지고, 이스라엘의 최고의 번영을 도모할 만큼 정치․경제․외교적 수완이 뛰어난 자(왕상 9:11-28).
 ⑦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린 채 이방 우상을 숭배하며, 그 산당을 건축한 것을 볼 때 지속족인 신앙을 소유하지 못한 자(왕상 11:3-8).
 
5. 구속사적 지위
 이스라엘 통일 왕국의 제3대 왕으로서, 이스라엘 왕들 중 최고의 부귀와 영광과 지혜를 소유한 왕(왕상 2:12).
 ② 뛰어난 지혜와 명철을 소유한 솔로몬은 만왕의 왕이시요 참 빛과 진리를 계시하여 주시는 주님의 모형임(왕상 3:12;요1:9;6:37).
 ③ 솔로몬 왕국의 영화와 부귀는 성도가 누릴 영원한 천국의 영광을 예표함(롬 14:17).
 ④ 시작은 좋았으나 말년에 하나님의 축복을 저버리고 타락의 길을 감(왕상 11:9-13). 이는 인간 지혜와 나약함을 증거함.
 
6. 실수
 외교를 위해 바로 왕의 딸을 아내로 맞음(왕상 3:1).
 선민으로서, 왕으로서의 성결됨을 잊고 1,000명에 달하는 처첩을 취함(왕상 11:1-3). 
 노년에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부귀와 향락과 우상 숭배를 도모함(왕상 11:4-8;전2:8).
 ④ 과중한 건축과 소비 생활로 백성들을 힘겹게 하여 결국 왕국 분열을 야기함(왕상 12:1-4).
 
7. 평가 및 교훈
  솔로몬은 왕으로서 백성들을 통치하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 헌신을 다짐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이러한 자세를 하나님께서 무척 기뻐하심을 볼 수 있다. 곧 하나님께서는 헌신을 다짐하는 솔로몬에게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응답하신 것이다(왕상.3:2-15). 참으로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원하는 성도들에게 풍성한 은혜를 예비하신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무슨 일을 하는 데 있어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 헌신을 다짐하며, 그 손길을 따라 일을 행할 수 있도록 간구해야 하겠다(약 4:3). 그리할 때 솔로몬이 구하지 않았던 부와 영광까지 받았듯이 우리도 차고 넘치는 은혜를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솔로몬은 당대의 가장 뛰어난 지혜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지혜로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뜨거운 신앙으로서 왕에게 필요한 지혜를 하나님께 간구하였고, 또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이다(약1:5).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향하여 간절히 구하는 자에게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까지도 보여 주신다고 하셨다(렘33:2,3,). 그러므로 우리도 솔로몬과 같이 하나님께 기도함으로써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부여받아야 하겠다.
 
  솔로몬은 왕이 된 후 첫 번째 사업으로서 이스라엘의 숙원 사업인 성전 건축에 역점을 두었다(왕상6:1). 곧 그는 자기의 궁을 짓기보다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모범적인 태도를 취한 것이다. 이처럼 성도는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마 6:33). 더욱이 솔로몬이 가장 아름답고 값진 것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한 것과 같이 우리의 값진 바 된 시간과 정성과 물질을 드려 하나님의 사역을 이뤄나가야 하겠다.
 
  솔로몬의 말년은 온통 실패 투성이다. 곧 그는 성결된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이방 여인을 처첩으로 거느리고, 우상을 숭배하며 우상의 산당을 짓는 가증한 죄악을 자행하였다(왕상11:1-8). 이러한 실패는 그가 축복으로 얻은 바 된 부귀와 영광을 한순간 자기의 쾌락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켰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우리도 성도의 본분을 망각한 채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나의 이익을 도모하고 있지는 않은가? 한 순간이라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도록 생명의 근원인 바 우리의 마음을 힘써 지켜야 하겠다(잠 4:23).
 
  솔로몬은 하나님께 대한 경건한 신앙을 소유하였을 때는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말미암아 가장 지혜로운 자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먼 곳 남방에서 스바 여왕이 그의 지혜를 듣기 위해 이스라엘을 방문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가 신앙에서 떠나 우상 숭배에 빠지게 되었을 때 그는 누구보다도 어리석은 자가 되고 말았다(왕상 4:30;11:9). 인간적인 지식은 뛰어 났는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전혀 선을 행치 못하고 악만 행하는 가장 어리석은 자가 된 것이다.

 

 

72-여로보암 (북왕국 이스라엘의 제1대 왕)
 
1. 인적 사항
여로보암은 ‘백성을 더하게 하소서’라는 뜻. 
에브라임 지파 출신(왕상11:25).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22년간 통치(왕상12:2;14:20).
④ 솔로몬의 신복 느밧의 아들, 모친은 수루아(왕상 11:26).
⑤ 고향은 세겜의 서쪽 사마리아 스레다임(왕상 11:26).
⑥ 아들로는 아비야와 나답이 있음. 
 
2. 시대적 배경
  여로보암 당시 이스라엘은 대변혁을 겪었다. 즉 솔로몬 사후 이스라엘 왕국이 분열됨으로써(B.C.930) 남왕국은 남왕국 대로 정치적 안정을 회복하기 위해 정비를 막 서두르게 되었고, 북왕국은 북왕국대로 정치적, 종교적 정비를 서두르던 때였다. 또한 이런 국내적 대격변과 함께 국외적으로도 솔로몬 말기부터 서서히 이스라엘을 침공해 오던 주변 국가들의 세력이 강성해짐에 따라 상당히 위기감이 고조되어 있던 때였다. 그러나 솔로몬 때까지 탄탄했던 이스라엘이었기 때문에 남북 왕국 분열 직후인 이 당시에는 아직 외적의 침입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 당시에는 남북 왕국간의 적대 감정이 매우 높아 잦은 전쟁이 벌어졌다. 이러한 시기에 여로보암은 새롭게 북왕국을 창건한 자로서 정치적으로는 매우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였으나 종교적으로는 악한 선례를 만듦으로써 북왕국 멸망의 근본 원인을 재공하고 말았다.
 
3. 주요 생애
 출생
      ―
         ―
 요셉 족속의 노역을 감독
      ―
  왕상 11:28
 자신의 왕됨을 예언 받음
      ―
  왕상 11:30-32
 솔로몬에게 반역함
   B.C.938 년
  왕상 11:26
 애굽으로 도피
       "
  왕상 11:40
 북쪽 열 지파의 요청으로 애굽에서 나옴
      ―
  왕상 12:1-3
 르호보암에게 노역 완화를 요구
      ―
  왕상 12:4-15
 북쪽 열 지파의 왕으로 추대됨
   B.C.930 년
  왕상 12:20
 세겜과 브누엘을 요새화함
      ―
  왕상 12:25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움
      ―
  왕상 12:27-30
 레위인의 제사장직을 폐함
      ―
  왕상12:31; 대하11:14
 장막절의 날짜 변경
      ―
  왕상 12:32
 벧엘 제단 훼파 예언 들음
      ―
  왕상 13:1-10
 아히야에게서 재앙이 예언됨
      ―
  왕상 14:7-10
 르호보암과의 전쟁을 계속함
      ―
  왕상 14:30
 애굽 왕 시삭의 침입을 받음
      ―
  왕상 14:25
 유다 왕 아비얌과의 전쟁에서 패함
   B.C.913 년
  대하 13:1-20
 죽음
   B.C.910 년
  대하 13:20
 
4. 성품
솔로몬 왕의 인정을 받아 공사의 감독자로 발탁될 만큼 부지런하고 유능한 자(왕상11:28).
이스라엘 분단에 대한 아히야의 예언을 듣고 곧 반란을 일으킬 만큼 정치적 야욕이 강한 자(왕상 11:26-32).
애굽 망명 후 유다 지파와 솔로몬 통치에 대한 백성들의 반목을 충동질하여 정권에 도전할 만큼 계략이 뛰어난 자(왕상12:2-4).
④ 이스라엘 열 지파의 추대를 받고, 북왕국의 초대 왕이 된 것을 볼 때 정치․군사적 지도력이 뛰어난 자(왕상12:1-3, 20).
⑤ 왕이 된 후 성막을 가진 유다로부터 종교적으로도 독립하는 동시에 왕권도 강화하기 위하여 북쪽 지역에 많은 산당과 우상을 만들만큼 대담한 인본주의 자(왕상 12:27, 31).
⑥ 하나님의 책망조차 무시할 정도로 교만한 자(왕상 13:1-10).
 
5. 구속사적 지위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갈라진 후 북왕국의 초대 왕이 됨(왕상 12:20).
왕권 강화를 위해 벧엘과 단에 우상을 만들어 섬기게 함으로써 자신뿐만 아니라 백성들까지도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게 한 왕(왕상 12: 28).
여로보암과 그 집을 향한 하나님의 재앙이 선포됨. 이는 세상적 정욕만을 추구하는 자에게 임할 심판의 표징이 됨(왕상 14:7-16).
 
6. 주요 업적
솔로몬의 ‘밀로’ 건축과 예루살렘 성벽 수축 공사를 감독함(왕상 9:15).
세겜과 브누엘을 건축하여 군사적인 요새를 강화함(왕상 12:25).
 
7. 실수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워놓고, 백성들에게 우상 숭배를 강요함(왕상 12:27-29).
레위 자손이 아닌 보통 백성을 제사장으로 삼음(왕상 12:31;13:33).
후세들에게 악한 선례를 남김으로써 결국 북왕국 멸망의 원인을 제공함(왕상 14:10).  
 
8. 평가 및 교훈
여로보암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이것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왕상12:28,29)고 하며 이를 경배하였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경시한 채 자신의 생각과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것은 곧 우상숭배와 동일한 죄악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있어서 완악한 마음이나 자신의 이해관계가 앞서지 않도록 하며 오직 하나님의 방법으로만 그 분을 섬겨야 한다.
 
여로보암은 일찍이 솔로몬 왕의 인정을 받아 요셉 족속의 역사를 감독할 만큼, 또한 북쪽 10지파의 추대로 왕이 될 만큼 부지런하고 유능한 자였다(왕상 11:28;12:20). 그러나 이렇게 뛰어난 지도자요 존경을 받던 그였지만 하나님을 떠남으로써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임을 당했다. 이를 통해 하나님 없이는 인간의 지혜와 칭찬이 헛됨을 깨닫게 된다. 더욱이 하나님을 버리는 자는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자신도 버림받게 됨을 기억해야 하겠다. 참으로 일이 형통할 때에 더욱 하나님을 겸손히 섬기는 자가 되자.
 
여로보암은 솔로몬의 왕권에 대적하여 북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였다. 이로써 그는 후세들에게 이스라엘의 분열이라는 좋지 않은 전통을 남겼고, 더더욱 우상 숭배를 조장함으로써 백성들의 신앙을 변절시켰다. 혹시 우리도 여로보암처럼 그릇된 신앙의 모습을 신앙의 후배들에게 남기고 있지는 않는가?
 
9. 핵심 성구
  “여로보암에게 이르되 너는 열 조각을 취하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나라를 솔로몬의 손에서 찢어 빼앗아 열 지파를 네게 주고”(왕상 11:31).

 

 

73-르호보암 (남북 왕국 분열의 장본인)
 
1. 인적 사항
르호보암은 ‘백성이 늘다’의 뜻.
이스라엘 통일 왕국의 마지막 왕이자 남유다의 제1대 왕(왕상 14:21).
솔로몬과 암몬 여자 나아마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왕상 14:21. 31).
④ 처 18명, 후궁 60명, 아들 28명과 딸 60명을 둠(대하 11:21).
⑤ 그리스도의 조상(마 1:7).
 
2. 시대적 배경
  르호보암이 통일 왕국의 왕위에 오를 당시 이스라엘은 정치․경제․문화적으로 번영과 부를 누리고 있었지만, 내적으로는 각 지파들 간의 갈등의 심화와 솔로몬 때부터 쌓였던 세금과 부역 등으로 인한 수많은 불평들이 백성들 안에 잠재해 있었으며 이것이 남북 왕국 분열의 근본 원이 되었다. 또한 종교적으로도 여호와 신앙이 극도로 와해된 채 이방 신앙에 젖어 들고 있었다.
 
  한편 솔로몬 전성기 때까지만 해도 거의 외적의 침입을 받지 않던 이스라엘은 솔로몬 말기부터 주변 국가들의 침입을 받기 시작하다가 르호보암 때에는 애굽 왕 시삭의 대 규모의 침입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직은 외적의 위협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으며, 대신 남북 왕국간의 계속된 전쟁으로 이스라엘은 점차 세력이 약화되었다.
 
3. 주요 생애
 출생   
    B.C.971년
 
 왕위를 계승함
   41세, B.C.931년
  왕상 11:43
 강제 노역 제도의 개혁을 거절함
         "
  왕상 12:4-14
 열 지파의 반역을 겪음
         "        
  왕상 12:16-19
 남 유다를 다스림
         "
        ―
 방비용 성읍들을 건축
        ―
  대하 11:5-12
 3년간 번영을 이룸 
     B.C.930-928년
  대하 11:17
 우상을 숭배함
        ―
  왕상 14:21-24
 애굽 왕 시삭의 침략을 받음
   46세, B.C.926년
  왕상 14:25-28
 죽음
   59세, B.C.913년
  왕상 14:31
 
4. 성품
노인의 교도를 무시하고 자기와 함께  자라난 소년들의 의견만을 들을 만큼 어리석은 자(왕상 12:8-11).
백성들의 불만과 지파간의 갈등을 무시한 채 무모한 강압 정치만을 단행할 만큼 권력욕이 강하고 경솔한 자(왕상 12:14).
아들 아비야를 후계자로 지목하고 나머지 아들들에게 각 성읍을 다스리도록 하여 국력을 강화시킨 것을 볼 때 책략이 뛰어난 자(대하 11:22, 23).
④ 나라가 강성하여 지자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고 자신을 의지하고 나갈 만큼 교만한 자(대하 12:1).
 
5. 구속사적 지위
이스라엘 통일 왕국의 최후의 왕인 동시에 분열왕국 남유다의 최초의 왕.
동족간의 전쟁을 항상 치룬 대표적인 왕(대하 12:15).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마 1:7).
④ 이스라엘 왕국 분열의 주범(대하 10:10-14).
 
6. 주요 업적
15개 성읍을 건축하고 군대를 정비함(대하 11:5-11).
아비야를 후계자로 지목하고 지혜롭게 처신함으로써 아들들 간의 왕위 쟁탈전을 사전 방지함(대하 11:22).
즉위 3년 동안 하나님께 순종하고 국력을 강화시킴(대하 11:17).
 
7. 실수
백성들의 민의(民意)와는 달리 획일적인 강경책을 고수함으로써 왕국 분열의 비극을 초래함(왕상 12:13-17).
나라가 강성해지자 여호와의 율법을 저버리고 온갖 우상을 숭배함(왕상 14:22-24;대하 12:1,2).
선민의 왕으로서 많은 처첩을 거느림(신 17:7;대하 11:18-21).
 
8. 평가 및 교훈
르호보암은 왕이 된 후 주위 백성들의 탄원과 원로들의 진언을 무시한 채 강압 정치를 실시함으로써 이스라엘의 남북 분열을 초래하였다(왕상 12:3-20). 이처럼 자신의 명예와 권력에만 급급하는 자는 지혜자의 말도, 사태의 정도도 도무지 알지 못한 채 우매한 길로만 나아갈 수밖에 없다. 더욱이 지도자 된 자가 판단력을 상실했을 때는 그 결과가 극히 치명적인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혹여 우리 가운데도 그와 같이 자신을 위한 특권 의식에 사로잡혀 있지 않는가 돌아보아야 하겠다.
 
르호보암은 나라가 견고하고 세력이 강해지자 교만에 빠져 여호와의 율법을 저버렸다(대하 12:1). 이로 말미암아 그는 자신의 머리와 지혜로 견고히 쌓았던 요새화된 성읍과 국방이 하나님이 보내신 바 된 애굽 왕 시삭의 파괴 아래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이와 같이 우리도 풍요롭고 형통할 때 자칫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을 외면하기가 쉽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임을 깨달아(시 137:1) 형통할 때에 더욱 스스로를 겸비해야하겠다.
 
9. 핵심 성구
  “르호보암이 나라가 견고하고 세력이 강하매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니 온 이스라엘이 본 받은 지라”(대하 12:1).

 

74-아사 (종교 개혁을 단행한 제3대 유다 왕)
 
1. 인적 사항
아사는 ‘치료라는 뜻.   
남유다 제3대 왕으로 41년간 통치(왕상15:9).  
그리스도의 조상(마1:7).
④ 르호보암의 손자. 아비얌과 마아가 사이의 아들(왕상15:8,10).
⑤아들 여호사밧이 왕위를 계승함(15:14).
 
2. 시대적 배경
  이스라엘 왕국 분열 이후 계속되어 오던 남북 간의 전쟁이 북왕국 여로보암 왕에 대한 남왕국 2대 왕 아비야 승리로 일단 중단되고, 남북간의 어느 정도 정치적 평화를 누리고 있던 때였다. 이러한 때에 아사 왕은 선한 통치로 남왕국 최초로 종교 개혁을 실시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더욱이 B.C.901년 구스 사람 세라의 대규모 공격이 있었으나 그것을 훌륭히 막아냄으로써 가일층 종교 개혁에 더욱 박차를 가하여 왕실 내에까지 개혁을 실시하는 개가를 울렸다. 그러나 아사는 이와 같은 대내외적인 선정에도 불구하고 말년에 교만하여 타락함으로써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고 질병에 의해 죽고 말았다.
 
3. 주요 생애
 출생
       ―
         ―
 왕위 계승
   B.C.910년
   왕상 15:8
 제1차 종교개혁
       "   
   왕상 15:12
 10년간 정치적 안정을 누림
   B..C910-900년
   대하 14:1
 건축 사업 실시
       ―
   대하 14:6
 세라의 침입을 격퇴 
   B.C.901년
   대하 14:12
 제2차 종교개혁
       ―
   대하 15:16
 아람 왕 벤하닷과 동맹, 북왕국 공격
   B.C.884년
   왕상 15:16-22
 선견자 하나니의 책망을 들음
       "     
   대하 16:7-9
 선견자를 옥에 가둠
       "
   대하 16:10
 일부 백성을 학대함
       "
   대하 16:10
 발에 병이 남
   B.C.871년  
   대하 16:12
 죽음
   B.C.869년
   대하 16:14
 
4. 성품
즉위 후 10년 동안 우상을 타파하며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율법과 명령을 행하도록 할만큼 믿음을 소유한 자(대하14:1-4).  
평안할 때에 외세의 침략에 대비하여 힘써 견고한 성읍들을 건축한 것을 볼 때 매사에 안일하지 않고 자신의 사명에 충성한 자(대하14:6,7).   
자신의 종교 개혁에 따르지 않고 우상을 숭배한 모친조차도 태후의 자리에서 축출할 정도로 결단력 있고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으로 행동한 자(대하15:16).   
④ 자신이 이방 군대와 동맹한 것을 선견자가 책망하자 그를 옥에 가둔 것을 볼 때 말년에 하나님보다는 자신을 과신한 자(대하16:7-10).
 
5. 구속사적 지위
남유다의 제3대 왕으로서 41년간 통치(왕상15:9,10).
이스라엘 남북 분단 이후 최초로 국가적 종교개혁을 단행한 왕(대하 15:8-15).
 
6. 실수
악한 이방 국가 왕과 동맹을 맺음(왕상15:16-22).  
자신을 책망하는 선견자를 옥에 가두고 일부 백성을 학대(대하16:10).   
통치 초기에는 하나님만을 의지했으나 말년에는 하나님을 떠남(대하16:7-12).
 
7. 평가 및 교훈
아사는 즉위 초기에 외적으로 온갖 우상을 파괴하였고, 내적으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율법과 명령을 지켜 행하도록 하는 종교개혁을 단행하였다. 이로 인하여 그 백성들은 10년 동안 평화를 누릴 수 있었는데, 여기서 우리는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화를 누릴 수 있음을 깨닫는다. 
 
아사는 종교개혁을 단행할 때에 자신의 모친이라 할지라도 우상을 숭배한 죄에 대하여는 단호히 처단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자신과 또 자신과 관련된 사람에 대해서는 관대한 채 다른 자들만 정죄 하기에 급급한 현세대에 좋은 귀감이 된다. 참으로 우리는 아사와 같이 어느 누구가 되었던지 간에 악에 대해서는 분별력 있게 결단할 수 있어야 하겠다(고전10:6). 
 
즉위 초기의 아사는 종교개혁을 실시하고 구스의 백만 대군을 격퇴하는 등 대내외적으로 선정을 이루었다. 그러나 즉위 말기에 교만해져서 하나님보다는 자신을 과신․타락함으로써 결국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대하14:1-12;16:7-14).

 

75-오므리 (북왕국 최대 왕조의 시조)
 
1. 인적 사항
오므리는 ‘여호와께 예배하는 자’라는 뜻. 
북이스라엘의 6대 왕으로 12년간 재위(왕상 16:23).
아합의 아버지 오므리 왕조의 설립자(왕상16:29).
④ 엘라 왕 때 군대장관을 지냄(왕상 16:16).
 
2. 시대적 배경
  B.C.885-874년까지 약 12년간 북왕국의 제6대 왕으로 통치한 인물. 이스라엘 왕국 분열 이후 북왕국은 이 당시까지 계속된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왕국으로서 기반이 매우 약했다. 그러나 군대장관이었던 오므리가 북이스라엘의 왕으로 즉위하면서 그의 놀라운 군사적 역량에 의해 북왕국의 분산되었던 힘들이 하나로 규합되면서 사마리아 성읍을 수도로 하여 강력한 국가의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 또 대외적으로 활발한 정복 사업을 펼침으로써 북왕국의 국제적 지위도 많이 격상시켜 놓았다. 이로 인해 ‘오므리 왕조’하면 북왕국의 대명사로 멀리 예후 왕 때까지도 사용되었다. 또한 북왕국 제7대 왕인 아합 왕이 정치, 경제적으로 큰 번영을 누릴 수 있었던 것도 오므리 왕의 공헌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3. 주요 생애
 출생
         ―
          ―
 엘라 왕의 군대 장관이 됨
      B.C.886년
   왕상 16:16  
 모반자 시므리를 처단함
      B.C.885년 
   왕상 16:9,10,15-20  
 왕으로 추대됨
      B.C.885년
   왕상 16:16
 반란자를 죽이고 전 이스라엘을 통일
      B.C.885년
   왕상 16:22
 사마리아 성읍 건축
      B.C.880년     
   왕상 16:24
 아람 왕 벤하닷 1세와 전쟁
      B.C.880년
   왕상 20:34
 모압 정복
      B.C.880년
   왕하 3:4
 죽음
      B.C.874년
   왕상 16:28
 
4. 성품
시므리의 반란시 백성들에게 왕으로 추대된 것으로 보아 용감하고 뛰어난 명성을 지닌 자(왕상16:16).
반란자들을 죽이고 북의스라엘의 내란을 평정할 정도로 군사적 지략이 탁월한 자(왕상 16:21,22).
앗수르 문서에 이스라엘이 ‘오므리의 땅’으로 표현될 정도로 대외적으로 정책이 능했던 자.
④ 우상 숭배와 악한 율례를 세워 하나님의 노를 격발케 할 정도로 완악한 자(왕상 16;25,26;미 6:16).
 
5. 구속사적 지위
정치적으로는 북이스라엘 왕국을 다스린 가장 유능한 왕들 중의 하나였으나, 신앙적으로는 악의 대명사가 된 왕(왕상 16:23-27).
북이스라엘의 수도로 사마리아 성읍을 건축함(왕상 16:24).
후대에게 불신앙의 대표적 모습인 ‘오므리의 율례’를 남김(미 6:16).
 
6. 주요 업적
북왕국이 분열되었을 때에 나라를 하나로 결집함(왕상 16:21,22).
사마리아를 수도로 세워 북이스라엘의 기강을 확립(왕상 16:24,27).
 
7. 실수
우상 숭배의 정도가 역대 왕보다 심함(왕상 16:25).
후대에게 사악한 율례를 남겨 혼합적 신앙을 야기함(왕상 16:25).
 
8. 평가 및 교훈
오므리는 정치․군사적인 면에서 볼 때 무척 뛰어난 왕이었다. 즉 그는 사마리아를 건설하여 이스라엘의 기강을 확립하였고, 당시 앗수르인들이 이스라엘을 ‘오므리의 땅’이라 부를 정도로 대외적인 안정을 구축하였다. 그러나 이렇듯 훌륭한 업적을 쌓았을지라도 그는 하나님 앞에 온갖 불의한 일을 행하였기에 악의 대명사로서 평가될 수밖에 없다(왕상16:24-27).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 신실함이 없이는 다른 어떠한 것이 뛰어나다 할지라도 결국 심판을 피할 길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 역시 소속된 집단에서 명성을 날리고 있으나, 정작 중요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불의를 행하고 있지는 않는가?
 
오므리는 이전의 모든 왕들보다 더욱 악을 행하였고, 그가 남긴 사악한 전통과 우상 숭배는 그의 아들 아합 왕 때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왕상 16:25-34). 결국 이러한 종교적 전통은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가져오게 하였는데, 우리는 먼저 된 자가 이룩해 나가는 전통이 후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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