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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상, 도구주의 듀이가 끌린 프래그머티즘 : pragmat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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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프래그머티즘(pragmatism)

 

현대 미국의 대표적 철학. 관념이나 사상을 행위(그리스어로 pragma)와의 관련에서 파악하는 입장으로 실용주의(實用主義)라고 번역된다. 1870년대에 C.S.퍼스에 의해 주장되었고 19세기 말에 W.제임스에 의해 전세계에 퍼졌으며 20세기 전반(前半)에 와서 G.H.미드와 J.듀이에 의해 더욱 구체화되었다. 퍼스에 의하면 관념의 의미는 그 관념의 대상이 행위와 관련이 있는 어떤 결과를 초래하느냐에 있다. 예컨대 󰡐가소적(可塑的)󰡑이라고 하는 관념의 의미는 그렇게 표현되는 것, 예를 들면 찰흙을 손가락으로 누르면 그것은 손가락이 누른 대로의 형태가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관념의 의미를 밝히기 위해서는 관념의 대상에 실험을 가함으로써 어떤 결과가 생기는가를 생각해 보면 된다. 따라서 이러한 실험을 생각할 수 없는 관념은 무의미한 관념으로서 철학상의 논의에서 제외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퍼스의 프래그머티즘은 관념의 의미를 밝히는 방법으로서 제기되었는데, 이 방법을 진리의 문제에 응용한 것이 제임스 프래그머티즘이다. 제임스에 의하면 관념의 의미는 그 대상이 초래하는 결과에 있으므로, 예컨대 신()이라고 하는 관념도 신을 믿음으로써 용기가 생긴다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그것이 바로 신의 관념의 의미이다. 따라서 이러한 의미를 갖는 한도 내에서 신의 관념은 진리이며 더욱 일반적으로 말해서 어떠한 관념이라도 그것이 유용(有用)한 결과를 초래한다면 그 관념은 진리라고 제임스는 말한다. 이 주장이 전세계에 퍼지면서 프래그머티즘은 유용한 것이야말로 모두 진리라는, 즉 유용설(有用說)로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그러나 제임스가 말하고자 한 것은 한정적(限定的) 진리를 인정함으로써 설령 사실에 어긋나는 신앙이라 할지라도 모든 사람에게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믿을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는 일이며, 그리고 가령 󰡒지금 몇 시입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오늘은 일요일입니다󰡓라고 대답하였을 때, 그 대답이 비록 사실이라 할지라도 진리라고는 할 수 없는 것처럼, 진리가 진리로서 성립하기 위해서는 목적에 맞지 않으면 안되며, 인간생활이나 행위에서의 유용성을 떠나서는 진리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영국의 F.C.S.실러나 이탈리아의 G.파비니는 이러한 제임스의 생각을 이어받고 있다. 듀이는 관념의 의미는 그것이 초래하는 결과에 있다고 하는 퍼스나 제임스의 주장을 더욱 발전시켜 관념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명확한 상황을 결과로서 낳게 하기 위한 실험적인 가설(假說)이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관념은 상황을 바꾸기 위한 도구로 취급되었다. 이 밖에 제임스의 영향을 받고 자아와 사회와의 관련을 논하여 이론사회학(理論社會學)의 길을 연 미드, 논리학의 영역에서 퍼스와 듀이의 영향하에 있는 콰인 등을 프래그머티스트에 포함시킬 수 있다.

 

*듀이(John Dewey, 18591952)

미국의 철학자교육학자. 버몬트주() 벌링턴 출생. 버몬트대학을 졸업하고, 존스홉킨스대학에서 학위를 받았으며, 미네소타미시간시카고컬럼비아 각 대학에서 교수를 역임하였다. 1930년 이후에는 컬럼비아대학 명예교수가 되었다. 그는 처음에 헤겔 철학의 영향을 받았으나, 차차 W.제임스의 프래그머티즘에 끌려, 이것을 발전시킴으로써 󰡐실용주의(實用主義)󰡑 또는 󰡐도구주의(道具主義)󰡑의 입장을 확립하였다. 그의 논리학적 이론의 연구(1903) 실험적 논리학 논문집(16) 사고의 방법(33) 등에 의하면, 모든 사고(思考)는 혼탁하고 불확실한 상황을 명확한 상황으로 개조(改造)하는 노력, 다시 말하면 󰡐탐구(探求)󰡑인 것이다. 관념이란 이를 위한 실험적인 가설(假說)이며 도구이다. 예를 들면, 처음에는 무엇인지 모르는 것도, 이것은 오렌지의 일종이 아닐까 하고 잘라 보고 맛봄으로써 오렌지라는 것을 알 수 있듯이, 실험적인 가설로서의 관념은 상황을 개조하기 위한 도구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칼의 좋고 나쁨이 잘 드느냐 아니냐에 따라 결정되듯이, 관념의 좋고 나쁨(진위)은 상황을 개조할 수 있는지의 유효성(有效性)에 의하여 판정된다. 이러한 기본적인 입장에서, 논리학은 모든 분야에서의 탐구 규범과 그 차이를 분명히 함으로서 앞으로의 탐구를 보다 더 유효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는 논리학탐구의 이론(1938)을 저술하였다. 또한 경험으로서의 예술(34)에 의하면, 경험은 인식(認識)의 한 형식일 뿐만 아니라, 반성이 가미되기 전에 느껴지며 살아 있는 것으로서 널리 해석된다. 인간생활은 혼탁하고 불확정(不確定)한 경험에서 통일적인 경험으로 이행하는 리드미컬한 움직임에 의해서 성립되었다. 전자에서 후자에 이를 때 우리에게는 새로운 의미와 충족감이 주어진다. 이러한 이행(移行)의 달성이야말로 예술의 본질적인 작용이라고 그는 생각하였다. 교육에 대해서는 학교와 사회(1899) 민주주의와 교육(1916)에 의해서 그의 사상을 알 수 있다. 그에 따르면, 교육이란 경험의 끊임없는 개조(改造)이며, 미숙한 경험을 지적인 기술과 습관을 갖춘 경험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주입시키거나, 반대로 학생들의 자발성(自發性)에만 의존하면 불충분하므로 여러 가지 경험에 참여시킴으로써 창조력을 발휘시킬 수 있는 계획성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 일을 위하여 학교는 현실사회의 모델일 뿐만 아니라, 사회개조의 모체가 될 수 있는 이상사회로서 제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92세라는 그의 생애동안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었고, 미국이 최대강국으로 부상한 시대였다. 그러나 독점자본주의의 발전으로 자유민주주의의 이상이 무너져 가는 시대이기도 하였다. 이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여 제퍼슨과 링컨의 고전적인 이상을 새로이 개조하고, 서민의 경험을 미국의 프래그머티즘에 의해 소화하여 보편적 교육학설을 창출하여 세계 사상계에 기여하였다. 1932󰡐전국교육협회󰡑 명예회장, 39년 중국에서 제이드 훈장, 49년 칠레에서 메리트 훈장을 받았고, 터키러시아 등을 방문하여 교육혁명을 지도하였다. 4687세에 42세인 로버타와 재혼, 52년에는 뉴욕주() 자유당 명예부위원장에 선출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정치적 지도자들은 그의 이상을 배반하고 힘과 금력으로 전세계를 지배하려 하였다. 여기에 그의 사상의 비극적인 성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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