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백스터”
참된 목자의 본이 되는 리처드백스터는 청교도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1615년 청교도 운동의 영향을 거의 받지 못한 잉글랜드의 슈롭셔의 로우토에서 태어난다. 그의 아버지는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했지만, 성경을 읽는 중 회심을 하였고 백스터에게 영적으로 감명을 주어 어린 백스터가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의 역사 부분을 읽고 깊이 연구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대학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였지만 존 번연처럼 독학하였고 혼자서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와 신학적 지식을 위한 논리학, 형이상학, 물리학 등을 열심히 공부하였다. 그리고 복음과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체험한 백스터는 일생동안 그의 사역에 열정을 쏟아 부었다.
1638년 백스터는 잉글랜드국교회에서 안수를 받은 후 1641년 작은 도시 키더민스터교회로부터 청빙을 받고서 교회에 부임하였다. 먼저 백스터는 목회사역에서 최우선적으로 설교준비와 연구에 전념하였다. 그는 설교사역이 항상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고 부지런하게 준비했고 자신을 준비했다. 백스터는 설교만으로는 회심을 통한 제대로 된 개혁을 적절히 이끌어 낼 수 없다고 생각하여 보조 사여자들과 함께 매주 2일에 걸쳐 교구민들의 각 가정을 반문하여 교리문답교육을 하였다. 백스터는 설교를 들으면서도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한 회중들이 요리문답 교육을 통해 많은 영적 지식을 얻도록 하였다. 백스터가 생각한 개혁의 궁극적인 목표는 회심이었다. 그가 목회사역에 있어서 설교와 교리문답 교육을 필수적인 목회 요소로 보았던 이유는 영혼들의 회심을 위한 가장 유익한 수단으로 확신했기 때문이다. 백스터는 기도생활도 강조하였다. 그의 기도는 매우 강력했고 기도는 설교와 마찬가지로 매우 중요한 업무가 되었다. 특별히 성도들에게 쉬지 않는 기도생활을 가르쳤다. 더 나아가 백스터는 철저한 공예배 출석을 강조하였다. 그는 성도들에게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단순하고 소박하게 드리던 예배를 회복할 것을 가르쳤다. 또한 백스터는 경건한 신앙생활의 실천을 매우 강조하였는데 그는 성도들의 생활이 개혁되기를 원하면서 특별히 거룩에 대해 자주 설교하였다.
그 결과 작은 촌락 키더민스터에 살고 있는 2천여명의 성인들 중 매주 600여 명의 신자가 회집할 정도로 성장하였다. 이러한 부흥으로 인해 아침과 저녁의 가정예배시간이 되면 모든 가정에서 시편을 읽는 소리가 울려퍼졌고 모든 골목이 찬송과 기도 소리로 메아리쳤다. 백스터는 키더민스터교회에서 사역하면서 얻은 경험을 통하여‘참된 목자’를 썼다. 그는 교회의 온갖 부패가 목회자에게서 시작된다고 생각하면서 목회자 개혁운동에 앞장섰다. 교회의 성장이 외적인 조건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하면서 먼저 목회자의 개혁을 시도하기 위해 주변 교회의 목사들과 함께 기도와 성경연구와 기도모임을 가졌다.
백스터는 1638년에 잉글랜드국교회에서 안수를 받았으나 실은 비국교도 목사였다. 그는 잉글랜드국교회의 예배 의식과 규율에 얽매이기를 거부하였으며 교회 안에서도 비국교도들을 보호하는데 관심을 쏟았다. 이와 같은 정부 당국과 청교도들과의 대립은 백스터의 설교사역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하였다. 백스터는 1662년 대추방 이후로 비국교들 가운데 보수적인 집단의 지도자로 등장하며 정부 당국이 설교를 금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하여 몰려온 성도들에게 당당하게 설교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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