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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콜라 철학
스콜라 철학(Scholasticism)은 중세 신학적 철학에 붙여진 이름이다. 형식적으로 역사에 나타나게된 것은 학교들에 그 기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운동의 지도자들은 ‘스콜라 철학자들’(Schoolmen)이라 부른다. 스콜라 철학은 본질적으로 이성과 종교를 조화시키려는 시도였다. 스콜라 철학자들은 논리가 신학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고 성경적이거나 교회 교의를 이성적으로 상술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성경을 향한 스콜라 철학자들의 접근방법은 배우 철학적이고 지성적이었다. 아리스토틀과 같은 헬라 철학자들의 많은 저서들이 발견되자 고대 철학에 대해 새로운 흥미를 갖게 되었고 그 방법들을 성경적 진리를 발견하거나 후원하는데 적용했다. 이성만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충족을 줄 수 없다. 계시가 더해져야만 한다. 성경은 최종적 권위를 갖고 있지만 종교회의와 ‘교부들’의 해석을 기준하여 이해해야만 한다. 다른 말로 하면, 로마 캐도릭교회의 가르침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스콜라 철학에 두 거성이 있는데 한 분은 안셀름(Anselm, 1033-1109)으로서 하나님의 존재를 존재론적 증명(ontological argument)을 발전시켰고, 두 번째 인물은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로서 스콜라 철학자들의 왕자로 여겨진다. 안셀름은 성경의 모든 진리가 철학으로 실증된다고 믿었지만 아퀴나스는 철학이 진리와 전혀 반대되지 않는다고 믿었고 철학과 신학이 하나님께로 나왔기 때문에 전혀 모순이 없다고 믿었다.
13세기에 이르자 스콜라 철학자들은 모든 신학적 질문들을 이성으로 해결하려고 했을 때 자신들의 확신을 잃기 시작했다. 7성례-세례, 견진성사, 성찬, 참회, 종부성사, 수임, 그리고 결혼-의 사상이 나타났던 시기도 스콜라 철학이 왕성했던 시기였다. 성례는 그리스도로부터 자신의 몸의 일원들에게 부여하신 은혜의 방편이었다. 특별히 성찬에 대한 새로운 견해들이 이 때에 일어났다. ‘화체설’(transubstantiation)이란 용어는 성찬식에서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문자적 육체와 피로 변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화체설은 4차 라테란 종교회의(1215)에 교리로 완전히 확정되었다. 성찬의 잔의 사용은 잘못될 수 있기 때문에 평신도들에게 분잔 되지 않았다. 이런 예식은 성찬의 두 요소들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담고 있다는 견해로 촉진되었다. 12-13세기에 이르자 우주적으로 수용된 유아 성찬식은 서방에서 금지되었다. 성찬은 주님의 성육신과 희생이 반복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신비주의
스콜라 철학과는 전혀 다른 운동이 동시에 있었는데 신비주의(mysticism)였다. 신비주의는 영혼 내에 있는 진리와 지혜를 위한 요청이었다. 그 목적은 신 또는 신성한 것과 연합하는 것이었다. 신비주의의 목적은 논리적 분석보다는 추상적, 논쟁보다는 열정에 의해, 머리보다는 가슴에 의해, 지성적 용맹성보다는 영적 감성에 의해, 예전과 축제보다는 하나님과의 영혼의 직접적인 접촉에 의해 내적 헌신과 영적 영감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성령과 개인의 영혼이 밀접한 관계를 갖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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