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성경인물 34 : 드루실라,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아나니아, 12제자

본문

반응형
166-드루실라 (용암 속에 매몰된 미모의 여인)
 
1. 인적 사항
  교회를 최초로 박해했던 유대 왕 헤롯 아그립바 1세의 막내 딸.
  에메사 왕 아시스의 아내, 유대인.
  ‘드루실라’는 드루시스의 애칭으로 ‘이슬에 젖은’의 의미.
 
2. 생애 주요 사건
 드루실라는 유대인으로서 율법을 무시하고 신앙인 들을 자신의 적으로 여기었다.
 바울이 두 번째로 로마 총독 벨릭스와 대면했을 때 그녀가 남편과 함께 등장한 것 외에는 성경에 별다른 언급이 없다.
 
(1) 에메사 왕 아시스와 결혼
   다른 자매들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A.D.44년 6살에 부친에 의해 에비파네스라는 사람과 약혼함.
     약혼자가 유대교가 된다는 조건에 의함.
     후에 에비파네스가 파혼함.
   ③ A.D. 53년경, 같은 조건하에 에메사 왕 아스시의 아내가 됨.
 
(2) 로마 총독 벨릭스의 유혹    
   결혼 일년 후 벨릭스의 유혹을 받음.
   벨릭스는 유다 노예 출신으로 로마 식민지의 총독이 됨.
   첫 남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합법적으로 벨릭스와 혼인함.
 
(3) 바울과 만남
   바울이 로마 총독 벨릭스 앞에서 재판을 받기위해 가이사랴로 옴(행24:22,23).
   남편에게 바울의 설교 듣기를 청함.
     새 전도자인 바울에 대해 호기심이 있었음.
      유대인으로서 자신의 불 신앙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낌.
   바울에게 전혀 예기치 못했던 말을 들음(행 24:24,25).
     바울은 다가오는 정의와 금욕과 심판에 대해 논함.
      바울의 진실한 설교가 그녀의 마음을 찌름.
   ④ 설교를 가로막고 바울을 감옥으로 돌려보냄(행 24:25).
     그녀가 빌릭스의 곁에 앉지 않았다면 벨릭스는 기독교로 개종하며 바울은 그날로 석방될 가능성도 있었음.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적이라고 여기던 모든 것을 바울에게 발견함.
      자신의 죄를 폭로했기 때문에 그를 증오함.
   ⑤ 다수의 신앙인 들을 학살하고 주위 사람들을 자신의 무덤으로 끌어넣음.
 
(4) 용암 속에 매몰된 여인
   바울이 베스도에게 이양된 지 약 20년 후, 베스비우스 화산이 폭발함.
   폼페이와 헤리클라니움이 멸망함.
   동생 아그립바 Ⅱ세와 함께 용암 아래 묻힘.
 
3. 성격과 업적
  절세에 미인.
  유대인으로서 하나님과 법도를 저버린 불신앙의 여인.
  비윤리적인 생활을 한 방자한 여인.
  하나님께 회개할 기회를 받고도 오히려 악을 더함.
 
4. 교훈
  자신의 마음이 황폐하고 죽어 있으면 자기 자신 뿐 아니라, 자신과 만나는 사람들까지도 황폐케 한다. 총독의 아내라는 위치에 있는 드루실라가 만약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새사람이 됐다면 많은 사람들이 큰 유익을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그녀는 많은 사람을 무덤 속으로 던져 넣고 말았다. 소금의 맛을 잃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주변을 부패시킨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위해서 뿐 아니라,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위해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잃지 않도록 항상 깨어 있어야 할 것이다(마5:13-16).
 
  드루실라는 사도 바울을 통해 회개의 기회를 얻었고 그 후로도 그녀에게는 20년이라는 긴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끝까지 회개하지 않음으로써 결국 용암 아래 묻혀 버리고 말았다. 마침내 그녀에게 심판이 가해진 그 때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자신을 맡겨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던 것이다. 회개할 기회는 계속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자.

 

167-아굴라와 브리스길라 (한 몸으로 교회를 섬긴 부부)
 
1. 인적 사항
 ① 아굴라는 브리길라의 남편임(행18:2). 
 ② 아굴라는 본도 태생의 유대인(행18:2)
 ③ 브리스길라는 로마 태생으로 명문가문 출신.
 ④ 브리스길라는 브리스가의 애칭.
 ⑤ ‘아굴라’는 ‘독수리’, ‘브리스가’는 ‘늙다’의 뜻.
 
2. 생애 주요 사건
(1) 고린도로 이주함
   A.D. 52년 크레스투스(Chrestus)의 교사에 의해 유대인의 소요가 일어남.
   글라우디오 황제의 유대인 추방령으로 로마에서 고린도로 이주함(행 18:2).
   천막 짓는 일을 함(행18:3).
   바울을 만나 함께 거하며 동업함(행18:1-3).
   바울을 만나기 전에 이미 기독교에 동정을 가지고 있었음.
 
(2) 바울의 동역 자들이 됨(A.D.55년경)
   바울을 만난 지 18개월 후, 바울의 동역 자로서 에베소에 감(행 18:11,18).
     자신의 가정을 그리스도인들의 집회소로 삼고 바울을 모심(고전 16:19).
      당시 대학자이며 능변가였던 아볼로의 예수에 관한 미약한 가르침을 듣고 그를 집으로 초청함(행 18:24-26).
      아볼로에게 그들의 원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경험과 은혜의 복음을 더 자세히 말함으로써 큰 유익을 줌(행 18:26-28). 
      바울이 예루살렘 방문 기간 중 에베소에 머무름.
   로마로 이주함
      그리스도인들의 집회소가 됨(롬16:3).
      바울에게 기쁜 소식을 전함으로 바울의 로마전도에 대한 열정을 북돋움(롬 1:11).
   에베소로 돌아와 디모데와 함께 사역함(딤후4:19).
   많은 이방교회를 세움(롬 16:4).
   목숨을 걸고 바울을 지키려 했음(롬 16:4).
 
3. 성격과 업적
 ① 초대교회의 훌륭한 부부 사역 팀.
 ② 바울의 친근한 동료.
 ③ 그리스도를 섬김과 동시에 자신들의 직업에 충실함(행 18:3).
 ④ 아볼로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메시지를 전해 줌.
 
4. 교훈
  성경에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따로따로 언급된 적이 없다. 당시 이들 부부의 효과적인 공동 사역이 주변 사람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음에 틀림이 없다. 이들은 서로를 보충해 주고 상대편의 장점을 활용하면서 부부로서 또한 동역 자로서 언제나 하나가 됨으로 주님께 영광을 돌린 것이다(빌 2:2).
 
  이들 부부는 예수님의 관한 아볼로의 설교가 충분치 않음을 알아차렸다. 아볼로는 주님에 관한 요한의 세례를 받았다는 것밖에 아는 것이 없었다. 이들이 그 자리에서 아볼로를 공박하는 대신에, 그를 자신들의 집으로 초청하여 예수에 관한 메시지를 함께 나누었음에 유의하자(행 18:24-26).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복음을 전파하는 데 있어 무엇보다도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지금 우리 이웃들은 우리 자신들의 가정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있는가?

 

168-아나니아 (행 22:12-16)
 
바울이 예수를 영접한 후 첫 번 친구는 아나니아입니다. 바울을 “형제”라고 부른 첫 사람도 역시 아나니아입니다.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도상에서 예수를 기적적으로 만나 영접함으로 옛 친구들을 모조리 잃어 버렸습니다. 바울은 옛 친구들에 의해서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혔고 새로운 친구가 하나도 없을 때 첫 친구가 아나니아입니다.
 
좀 더 자세히 아나니아가 어떤 사람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행22:12에 “율법에 의하면 경건한 사람으로” 그랬습니다. 성경은 아나니아를 경건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경건한 사람이란 하나님을 날마다 예배하고 죄를 멀리하고 두려워 할 줄 아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노아 같은 사람입니다. 에녹 같은 사람입니다. 다니엘 같은 사람이며, 아브라함 같은 사람입니다. 욥과 같은 사람입니다. 백부장 고넬료와 같은 사람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배반할 수 없고 죄 짓고 살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2. 칭찬 듣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12절에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그랬습니다. 그는 하나님께만 잘 한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도 잘했습니다. 우리들도 욕을 들으면 안 됩니다. 칭찬을 좋아해서는 안 되지만 칭찬을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칭찬 받고 사람에게도 칭송 되어야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 칭찬을 들으려면 안 믿는 사람보다 열 배는 더 잘해야 합니다.
 
그가 기독교인으로서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받았다는 것은 귀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나는 기독교는 잘 모르지만 기독교인들은 존경하고 싶다는 말을 들을 만큼 되어야 합니다. 그만큼 정직하고 모범적이고 섬기고 봉사해야 합니다.
 
3. 계시가 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행9:10-11에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가라사대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하셨습니다.
 
이같이 아나니아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주 상세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아무나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받을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호와는 종들에게 보이지 않고는 행하지 않으신다 했습니다. 정말 종의 마음을 가져야 보여주십니다. 보여주어도 기도도 안 해 주고 돕지도 않을 사람이라면 보여주시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대면해 주시는 것도 차이가 있습니다. 아무에게나 깊이 대면해 주지 않습니다. 민12:6-8에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그랬습니다.
 
그런데 아나니아를 보세요.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이 얼마나 상세한 보여주심입니까? 이처럼 6하 원칙에 의해서 정확히 계시 받는 것 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확실한 계시를 받을 수 있는 영성이 아나니아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교만할까봐 깊은 밤 꿈속에서 인치듯이 말씀하십니다. 인을 순식간에 치듯이 구체적이지 않게 보이신다는 말씀입니다. 감당 잘 못할 사람에게는 가르쳐 주셔도 애매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우쭐할까봐, 자랑할까봐, 교만할까봐 그러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를 위대하게 생각할까봐 계시 받은 것도 숨긴 적도 있었습니다.
 
4. 믿음의 역사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행9:12-19을 보면 “저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나이다 하거늘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했습니다.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안수할 때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지고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말씀과 능력이 함께 역사하는 믿음을 가진 아나니아였습니다. 말씀이 말씀에서 끝나지 않게 우리는 기도하여야 합니다.
 
5. 제자가 된 사람이었습니다.
 
행9:11에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일군은 많아도 헌신자는 적습니다. 신자는 많아도 제자는 적습니다. 그런데 아나니아는 제자였습니다. 보통 믿음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보통 헌신자가 아니었습니다. 주님을 배우고 본받고 따르려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명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교인은 많지만 사명자는 많지 않은데 사명자가 되어야 합니다.
 
6. 사람을 기른 사람이었습니다.
 
10년을 보고는 나무를 심고, 100년을 보고는 사람을 심어야 합니다. 아나니아는 사울을 인정하였습니다. 모두가 사울을 두려워하고 피할 때, 모두가 사울을 모를 때, 이 때 아나니아만은 사울을 인정하였습니다. 아나니아만은 사울에게 다가가서 기도하였습니다. 행22:16을 보면 사울이 직가에서 아나니아에게서 세례를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아나니아는 사람을 길렀습니다. 기독교의 거목을 길러낸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기른 사람이 세계에 복음을 크게 전한다면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이 사건 이후로 아나니아 이야기는 성경에 한 마디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 다음부터 사울이 바울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역사 속에 철저히 감취어 있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귀히 쓰신 겸손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7. 그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핍박시대입니다. 그러나 아나니아는 성령의 인도 따라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났고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동역해야 시험이 오지 않습니다. 드러내놓고 외치는 것만이 전도가 아닙니다. 종교의 자유가 없는 공산권에서도 하나님과 동역하는 사람들로 인해 교인들은 더욱 많아져 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받아 지혜롭게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천박스럽게 전도해서는 안 됩니다. 길거리에서 예수 천당이라고 귀에다 소리 지른다고 전도가 아닙니다. 그 소리에 믿을 사람도 있지만 그 소리에 예수님과 담을 쌓을 사람이 더 많습니다. 차라리 따뜻한 차 한 잔씩 대접하면서 “평안하시길 빌어요.” 하면서 전도하는 편이 100배 효과적입니다. 때로는 말의 전도가 앞서야 할 필요도 있지만 보통으로는 예수 믿으라는 말없이 봉사하는 것이 백 배 효과적일 수가 있습니다. 인격이 무시된 전도여서는 안 됩니다. 내 열심만 앞서면 도리어 방해 될 수 있습니다. 기도는 많이 하되 행함은 지혜로워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나니아는 핍박시대의 하나님과 사역한 성공적인 전도자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나니아는 우리에게 전도의 귀한 본을 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울이 아나니아를 만나 도움을 받았듯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 만나 줄 수 있는 영의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준비된 성도가 되길 원합니다. 우리 모두 아나니아와 같이 경건한 사람, 칭찬 듣는 사람, 계시를 받을 수 있는 사람, 믿음의 역사가 있는 사람, 제자가 된 사람, 사람을 기른 사람, 성공적인 전도자로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귀히 여김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169-12제자 이름 분석
 
1. 시몬 베드로:
'시몬'은 '듣는 자', 또는 '복종'을 뜻하며, '베드로'는 바위라는 뜻이다.
그는 가버나움 사람의 후예로서 벳세다의 어부였으며 요나의 아들로서 안드레와 형제였다. 그는 최초로 부름 받은 중요한 제자들 중의 하나이며, "천국의 열쇠"를 가지고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최초로 천국을 연 사도였다. 그는 사도로서, 광범위하게 여행하였고 신약성서에 포함된 두 서신을 썼고 끝내는 순교하였다.
 
2. 안드레:
'안드레'란 '남자답다'는 뜻을 가진다. 베드로의 형제로서 벳새다의 어부였고, 요한의 제자인 한 사람이었다. 그는 최초의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가 생각되며, 다른 형제의 개종에 공을 세웠다. 그의 사도로서의 공적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으며, 아가야 지방의 [파트레]에서 십자가에 달린 것으로 전해진다. (일설에 그는 감히 주님과 같은 십자가를 질 수 없다고 하여 X형 십자가를 선택했다고도 전한다.)
 
3. 야고보:
'대신 들어앉다'는 뜻의 이름이며 부친은 세베대, 형제로는 요한이 있다. 그는 갈릴리의 어였으나 최초로 부름 받은 예수님의 제자 중의 하나가 되었고 총애를 받았다. 헤롯에 의해 사도들 중에서 최초로 죽었다 (행 12: 1).
 
4. 요한: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야곱의 형제로서 갈릴리의 어부였다. 비교적 초기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충실히 따랐다. 그는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였고 사도로써의 행적은 풍부하다. 제 4 복음서와 세 서신을 기록했으며 계시록도 기록하였다. 그는 일찍이 에베소에서 죽은 것으로 추측된다.
 
5. 빌립:
'빌립'이라는 말은 '투쟁적'이라는 뜻이며, 그도 역시 벳세다의 어부였다. 초기에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나다니엘에게 그에 관해 얘기했다 (요 1: 45). 그의 사도로서의 행적이나 죽음에 관해서는 확실한 것이 알려져 있지 않다.
 
6. 바돌로매:
'탈마이의 아들 (Son of Talmai)'이라는 뜻이며 여러 가지 점에서 나다니엘과 동일인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게 하고 있다 (요 1: 45). 그는 아라비아와 아르메니아에서 전도한 것으로 추측되나 그의 사도로서의 행적과 죽음에 관한 확실한 것은 알려진 바 없다.
 
7. 도마:
'도마'라는 말은 '쌍둥이', 또는 '소리'를 뜻하며, 그는 '디두모스 (Didymus)'라고도 불렸다. 안디옥 출생으로서 그에 관한 기록은 요한복음에서만 얻을 수 있어서 그의 사도로서의 행적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페르시아에서 전도하고 에뎃사에서 죽은 것으로 믿어진다.
 
8. 마태:
'여호와의 선물'이라는 뜻의 이름인데 그는 또한 '레위'라고도 불렸으며 예수께서 부르시기 전에는 가버나움의 세리였다. 그는 제 1 복음의 기록자이며 그의 다른 행적에 관한 전설은 많으나 확실치 않다.
 
9. 야고보 (알패오의 아들):
'주님의 형제'라고도 불리며, 예루살렘에 교회를 세운 뒤에 그 운명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야고보서의 저자이다. 일설에, 그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의해서 성전 꼭대기에서 떨어 뜨려진 후에 곤봉으로 맞아 죽었다고 한다.
 
10. 유다 (야고보의 아들):
다대오 (막 3: 18)와 동일인이며 유다서의 저자로 추측된다. 사도적 행적의 기록은 아직 없다.
 
11. 시몬 (가나안 사람):
'셀롯'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그가 "Zealots" 당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세의 의식을 맹신적으로 지킨 사람들이다. 사도로서의 행적에 관한 기록은 없다.
 
12. 유다 (가롯):

"유다"는 '찬양하다'라는 뜻의 이름이다. "가롯"은 유대 지방의 지명인 듯하다. 그는 예수님과 동행하는 제자들 중의 회계였으며, 전도하거나 다른 제자들처럼 이적을 행한 것 같지는 않다. 주님에 대한 그의 반역은 영원히 그의 이름을 유명케 했다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