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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 : 4권. 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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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장 전체적인 교황제도가 고대교회 정치의 형태를 완전히 전복시켰다

 

(평신도의 투표 없이 무자격자를 임명했다. 1-3)

 

1. 감독직에 필요한 자격을 무시했다

 

지금부터 우리는 로마 교황청과 그 모든 예속된 단체들이 지키고 있는 교회 정치 제도와 그들이 항상 말하는 성직제도 전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 우리가 기술한 초대 교회와 고대 교회를 그들의 교회와 비교하는 것이 유익하겠다. 이렇게 비교한다면 우리를 교회의 이름으로 압박하며 말살하려고 광분하는 그들의 교회가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 어떤 방법으로 그들의 사역자가 되는지를 알기 위해서 우선 소명부터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 다음에 그들이 얼마나 충실하게 직분을 수행하고 있는가를 고찰하겠다.

우리는 먼저 주교부터 살펴보기로 하겠다. 이 논술의 처음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그들에게 영광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사실은 이 문제를 조금만 논하더라도 그들의 수치가 크게 드러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 나는 현재 쓰고 있는 이 글이 어떤 것인가를 잊지 않고, 단순한 교훈이 되어야 한다는 그 한계를 넘지 않겠다.

그러나 수치심을 아직 완전히 잃어버린 사람이 아니라면 현재 통상적으로 어떤 종류의 주교들이 선택되는가를 대답해 보기 바란다.

학식에 대하여 심사를 하던 관습은 확실히 너무도 구식이 되었다. 그러나 학식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그들은 교회에서 설교를 할 줄 아는 사람보다 법정에서 변호할 줄 아는 사람을 택한다. 분명히 지난 100년 동안 거룩한 학문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주교는 백에 하나도 되지 않았다. 내가 그 이전 시대를 말하지 않는 것은 그때가 더 나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관심이 현대 교회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의 도덕 생활을 평가한다면 고대 교회법이 무자격자라고 판단하지 않을 사람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술고래가 아니면 음행하는 자였고, 이런 죄가 없는 자는 노름꾼이나 사냥꾼이거나 또는 어딘가 생활에 허랑 방탕한 면이 있었다. 어떤 결점은 그다지 중대한 것이 아닐지라도 고대 교회법은 그런 사람을 감독직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어리석은 짓은 열 살도 되지 않은 소년을 교황의 허락으로 주교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들의 파렴치와 어리석음은 극도에 달해서, 자연적인 감정으로 보아도 불쾌한, 이 해괴망측한 죄악을 보고도 무서워 할 줄을 몰랐다. 이것을 보더라도 이런 부주의와 무관심이 있은 곳에서의 선거가 어떤 종류의 것이었는지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2. 주교 선거의 권리를 신자의 공동체에서 박탈했다

 

지금은 주교를 선거하는 권리를 평신도로부터 완전히 박탈했다. 투표, 찬성, 서명 승낙, 기타 유사한 일이 모두 없어지고 전권이 참사회 의원들에게 이전되었다. 참사회 의원들은 마음대로 주교직온 수여하고 직접 신도들에게 소개한다. 신도들에겐 그를 검토하라는 것이 아니고 받들어 모시라는 것이다.

그러나 레오는 이것은 이성이 허락하지 않으며 극악한 사기라고 규탄한다. 키프리아누스는 평신도의 찬성에 의한 선거만이 하나님이 주신 권리에서 유래하는 것이라고 증거하면서, 이와 반대되는 관습은 하나님 말씀에 배치된다는 것을 밝힌다. 아주 많은 종교 회의의 교령은 다른 방법을 엄중하게 금지하며, 그렇게 한 선거는 무효라고 선언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현대 교황 제도에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권리나 교회의 권리에 의한 교회법에 입각한 선거가 전혀 없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유일한 폐해라고 하더라도 교회에서 권리를 빼앗은 사실을 누가 변명할 수 있는가? 그들은 주교 선거에서, 평신도와 관리들은 올바르고 건전한 판단력보다도 증오심과 당파심으로 움직이므로 이렇게 부패한 시대에는 문제의 해결을 소수에게 위임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분명히 이것은 개탄해야 할 상황에 있어서의 악에 대한 비상 치료책이었다. 그러나 병 자체보다 치료약이 더욱 치명적인 듯한 이때에 왜 이 새로운 폐단을 고치지 않는가? 그들은 교회법에는 선거 절차가 정확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옛날 사람들이 감독을 선거하기 위해 모였을 때, 그들은 하나님 말씀이 정해 놓은 법칙이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자기들이 가장 신성한 법에 의해서 제한을 받는 것으로 믿었다는 것을 우리는 의심하는가? 참으로 하나님께서 감독의 참 모습을 그리신 말씀 한 마디가 마땅히 수만 개의 교회법보다 더 비중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가장 비열한 정욕으로 부패하여 법이나 공정성을 완전히 무시했다. 그래서 가장 훌륭한 법을 정하더라도 그것은 문서로서 묻혀 있을 뿐이다. 술고래나 음행자나 지독하게 상습적인 노름꾼들이 주교로 추천되어도 대개는 침묵하거나 심지어(계획적인 듯이) 승인한다. 나는 과장하지 않는다. 주교직은 간음하는 자들과 뚜쟁이들에게 대한 보수가 된다. 총사냥꾼과 매사냥꾼들이 주교가 되는 때에는 일이 아주 잘 된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이런 추행을 조금이라도 용서한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잘 가르치며, 다투지 않으며 운운하는(딤전 3:1-7, 1:7-9)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옛날 신자들에게는 훌륭한 법이 있었다. 그러면 왜 선거하는 책임을 신자들에게서 빼앗아 이런 자들에게 옮겼는가? 분명히 평신도들의 소란과 분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무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지금 그 책임을 평신도에게 돌리지 않고, 모든 법을 어길 뿐만 아니라 철저한 철면피가 되어 이기적인 야심으로 인간의 일과 하나님의 일을 제멋대로 흔동하는 자들이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은 도대체 무슨 까닭인가?

 

3. 태만한 결과로 통치자들이 간섭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한 구제책으로서 간섭하게된 것이라고 하는 것은 그들의 거짓말이다. 기록을 보면 옛날에는 감독 선거 문제로 도시에 소동이 일어난 일이 자주 있었다. 그러나 선거권을 시민들에게서 빼앗으려는 생각은 아무도 감히 하지 못했다. 그들은 이런 결점을 회피하며, 결점이 발생할 때에는 시정하는 다른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 진상은 다음과 같다.

일반 신자들이 선거에 더욱더 무관심해지기 시작하여 그 책임을 장로들에게 맡기고 자기들은 상관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에, 장로들은 이 기회를 악용하여 전제를 하게 되고 후에 새로운 법을 발표해서 자기들의 전제를 확립했다.

그뿐 아니라, 임명식은 단지 순전한 흉내뿐이었다. 그들이 한 심사는 내용이 극히 공허하고 천박한 것이어서 장식할 외형조차 전혀 없었다. 그러므로 어떤 지방의 집권자들이 로마 교황과의 합의로 얻은 주교 임명권은 교회에 아무런 새로운 손실도 야기시키지 않았다. 선거권을 참사회 의원들에게서 빼앗았을 뿐이기 때문이며, 참사회 의원들도 정당하게 그 권리를 가진 것이 아니라 사실은 도둑질한 것이었다. 참으로 추악한 예가 있었다. 경건한 군주라면 이런 부패한 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그들은 궁정에서 주교를 파견해서 교회를 장악하게 했다. 일반 신자들이 원하지 않은, 적어도 자유로운 발언으로 승인하지 않은 주교를 강압적으로 떠맡긴다는 것은 교회를 약탈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교회 내에 무질서한 관례가 이미 오래 되었기 때문에 군주들에게 자기들의 주교를 내세울 구실을 주게 되었다. 군주들은 자기들보다 권리가 더 많지 않은 자들이 자기들처럼 권리를 악용하고 있을 바에는 차라리 자기들이 그 권리를 차지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성직록 수여에 관련된 폐해. 4-7)

 

4. 사제와 부제를 임명하는 데 관한 폐해

 

이런 고상한 소명을 근거로 주교들은 자신들을 사도들의 후계자라고 자랑한다. 그러나 그들은 사제들을 임명하는 권리가 자기들에게만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고대의 제도를 부패시키는 심히 사악한 행위인데, 그것은 그들이 임명하는 자는 신자들을 인도하고 양육할 장로들이 아닌 제사를 드리는 사제들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부제를 임명할 때 그 부제들에게 진정한 직책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 , 성작과 성반에 관한 의식만을 시킨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칼케돈 회의(451)에서는 목회 의무가 없는 임명을 해서는 안 된다고 결정했다. , 임명된 사람에게는 그 직책을 수행할 곳을 지정하라고 했다. 이 결정은 두 가지 이유로 매우 귀중하다. 첫째, 교회는 불필요한 경비를 부담하지 않으며 빈민에게 분배해야 할 것을 게으른 사람들을 위해서 낭비하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것이다. 둘째, 임명된 사람들은 명예를 얻었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엄숙한 선서로 맡은 그 직책의 의무를 다할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로마 교회의 지도자들은(종교에서는 먹는 일 외에는 아무 일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므로) 성직 취임 자격을 먼저 생활 유지에 충분한 수입원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그 수입은 자기들의 교회 재산에서 오든지 또는 사제직에서 오든지 상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사제나 부제를 임명할 때에, 그들이 일할 곳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생활할 재력이 있기만 하면 성직을 준다. 그러나 칼케돈 회의가 요구한 성직 취임 자격이 생활비의 연수입이라고 하는 이 해석을 누가 용인할 수 있는가? 이런 경솔한 임명을 방지하려고 최근의 교회법에는 주교가 임지 없지 그냥 임명한 이들 성직자들의 생활을 돕는 것을 금지했다. 이 규정을 회피하기 위해서 새로운 기만 수단이 고안되었다. , 어떤 성직에 임명되든지 임명된 자는 그 칭호만으로 만족하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다. 이 합의에 따라서 생활비 청구 소송을 할 수 없게 된다. 나는 여기서 생겨난 수많은 협잡을 말하고자 하지 않는다. 예컨대, 어떤 자들은 일 년에 다섯 푼도10a)받을 수 없는 성직록에 대해서 자격이 있노라고 거짓말을 한다.

어떤 자들은 비밀 약정으로 성직록을 빌려 쓰고, 곧 갚겠다고 약속을 하지만 갚지 않는 때가 있다. 이 밖에도 이런 종류의 기괴망측한 일들이 많이 있다.

 

5. 임명식은 가짜

 

이런 심한 악폐를 타파하더라도, 일할 곳을 주지 않으면서 사제를 임명한다는 것은 언제든지 어리석은 짓이 아닌가? 그들은 다만 제물을 드리기 위해서 사제를 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래 장로는 교회를 다스리도록 임명하고 집사는 구제 물자를 수집하기 위해서 임명했다. 그들은 자기들의 행동을 지나치게 화려하게 가장함으로써 단순한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런 가식의 배후에는 아무것도 견실한 것이 없고 가짜뿐인데, 정신이 건전한 사람들에게 그것이 무슨 가치가 있을 수 있는가? 그들의 의식은 유대교에서 온 것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생각해 낸 것이므로 회피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일반 신도의 찬성을 물어보는 진정한 심사와(그들이 유지하는 그림자는 말할 것도 없이) 그 밖의 필요한 일들에 대해서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옛 의식을 본받노라는 그들의 서투르고 얼빠진 흉내와 그 우스운 몸짓들을 나는 그림자라고 부른다. 주교들은 대리를 시켜서 서품식이 있기 전에 후보자의 학력을 시험한다. 그들은 무엇을 물어보는가? 미사를 올릴 수 있는가, 교과서에 나오는 보통 명사나 동사의 변화를 아는가, 어떤 말의 뜻을 아는가, 이런 질문뿐이다. 그들은 성경의 한 절에 대해서도 그 뜻을 설명할 줄 몰라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유치한 초보지식이 없더라도 돈이나 권력의 배경이 있으면 사제가 되는 데에 아무 지장이 없다. 서품식에서 성단 앞으로 인도될 때에도 변함없는 협잡이 계속된다. 그들은 이 영예를 받을 자격이 있느냐고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누가 세 번 묻는다. 그러면 그들을 본 일도 없는 사람이 형식에 결함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연극의 한 몫을 담당하고 나서서, "그들은 자격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이 거룩한 신부님들은 어디가 나쁜가? 그들은 이런 공공연한 모독 행위를 함으로써 뻔뻔하게 하나님과 사람들을 냉소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들은 이런 관습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은 합법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이 분명하고 무서운 악행을 감히 비난하는 사람이 있으면, 옛날에 케레스(로마의 농업 여신)의 성스러운 의식들을 폭로한 사람들과 같이, 그들에게 잡혀서 사형을 당한다. 만일 그들이 진정 어떤 신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짓을 할 수 있었겠는가?

 

6. 성직록의 정체

 

그러면 그들은 성직록을 수여하는 문제에서는 얼마나 올바른 행동을 하는가? 성직록 수여는 이전에 임명식과 결합된 것이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분리되었다. 그들은 이 일을 아주 다양하게 행한다. 주교들만 사제직을 수여하는 것은 아니며, 그들이 "수여자"라고 불리는 곳에서도 그들이 항상 전권을 가진 것은 아니다. 성직록을 주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고 주교들은 수여한다는 명예만 가지고 있다. 또 학교에 의한 지명, 단순한 또는 교환 조건이 붙은 양도, 추천, 우선권, 기타인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같은 행동을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하나도 비난할 수가 없다. 나는 현재 교황 제도 아래에서는 고대인들이 정의한 의미의 성직 매매가 없이 수여되는 성직록은 백에 하나도 없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모두 돈으로 산다는 뜻이 아니다.

그러나 아무런 간접적인 배경이 없이 성직록을 받은 예가 스물에 하 나라도 있으면 내게 증명해 보라, 어떤 자들은 친척이나 인척 때문에, 어떤 자들은 부모의 세력으로 승진한다. 또 어떤 자들은 아첨으로 환심을 산다. 요컨대, 사제직을 수여하는 목적은 교회에 유익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를 얻는 사람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따라서 이것을 성직록(benefice)이라고 말의 본래 뜻으로는 "은혜"라고 한다. 그들은 이것을 군주들의 하사금에 지나지 않는 것, 군주들이 기사들의 호의를 얻기 위해서 또는 수고에 대한 보수로서 주는 것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는 이발하는 사람, 요리하는 사람, 노새 모는 사람, 그 밖의 비천한 사람들에게 이 상을 주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지금 각지의 법정에서는 다른 사건보다도 사제직에 관한 소송 사건들이 가장 시끄럽다. 결국 사제직은 마치 개들에게 던져서 사냥하게 하는 사냥감과 다름없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이 "목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또는 적에게서 빼앗은 전리품에 덤벼들 듯이 교회의 재산에 덤벼들었으며 또는 소송을 해서 교회를 얻었고 또한 돈으로 샀다. 어떤 자들은 추악한 아첨으로 얻기도 하고 또 어떤 자들은 말도 할 줄 모르는 어린아이때에 이미 아저씨나 친척에게서 유산으로 받기도 했다. 사생아가 아버지에게서 유산으로 받은 교회도 있다. 이런 자들을 그들은 "목자"라고 부르니 차마 이것을 들을 수 있는가?

 

7. 해괴한 악폐

 

평신도들이 비록 부패하고 무법한 행동을 한다지만 이렇게까지 무법 하거나 타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더욱 해괴한 일이 있다. 한 사람이-어떤 사람인지는 말하지 않겠으나 자기 한 몸도 다스릴 수 없는 사람인 것만은 확실하다-다섯이나 여섯 교회에 동시에 임명된다! 지금 군주들의 궁정에서는 각각 수도원장 직이 셋, 주교직이 둘, 대주교직 하나를 가진 소년들을 볼 수 있다. 한 참사회 의원이 성직록을 다섯이나 여섯, 일곱씩을 차지하고서 수입만 받으면서 그곳 교회들은 전혀 돌보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나는 이런 관습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 곳에서 비난한다는 것을 역설하지 않겠다. 나는 이 무질서를 금지한 엄격한 법규가 여러 회의에서 결정됐다는 사실을 이유로 들지 않겠다. 그들은 이 법규들을 언제나 마음대로 맹렬하게 배척한다. 단지 나는 이 악폐들은 해괴하다는 것, , 하나님과 자연과 교회 제도에 반대된다는 것을 말하려 한다. 한 약탈자가 동시에 여러 교회를 점령하는 것이나, 비록 원하더라도 자기의 양떼와 함께 있을 수 없는 사람을 목자로 임명하는 것은 다 해괴한 악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극도로 파렴치한) 그들은 모든 비난을 피하려고 이런 가증하고 추악한 것을 교회라는 이름으로 덮어 버린다. 또 그들은 외람되게도 이런 악행에 저 가장 거룩한 사도 계승권이 내포되어 있으며, 그 계승의 공로로 교회는 결코 멸망하지 않도록 되어 있다고 자랑한다.

 

(성직을 가진 수도사와 참사회 의원과 기타 인물들의 무성의와 나태. 8-10)

 

8. "사제"가 된 수도사들

 

이제 그들이 얼마나 충실하게 직책을 다하는가를 보자. 이것은 합법적인 목자를 판단하는 둘째 표식이다.

로마교회에서 임명되는 사제들 중의 일부는 수도사들이고 일부는 그들이 "세속 신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다. 이 두 무리 가운데서 수도사들은 고대 교회가 모르는 자들이었으며, 교회 안에 자리를 가지는 것은 수도 생활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고대에는 수도원에서 교회로 옮긴 사람은 수도사를 그만두었다. 심히 부패한 시대에 있던 그레고리우스까지도 이런 혼동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수도원장이 된 사람들에게 교회의 직분에서 떠나라고 했다. 수도사로 있는 것과 성직자로 있는 것은 서로 배치되므로 아무도 동시에 이 두 가지를 다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이 그가 내세운 이유였다. 교회법에 부적당하다고 선언한 사람이 어떻게 그 직무를 수행하느냐고 내가 물으면 그들은 무엇이라고 대답할 것인가? 그들은 물론 이노센트와 보니파키우스의 실패로 끝난 칙령을 인용할 것이다. 이 교황들은 수도사들이 수도원에 그대로 있으면서 사제의 명예와 권한을 받게 하였다. 그러나 무지한 바보가 로마 교황청을 차지할 때마다, 한 마디로 모든 고대 전통을 전복해도 좋다는 이 주장은 무슨 논리인가? 이 점은 후에 논하기로 하고, 지금은 교회가 비교적 순결했을 때에는 수도사가 사제의 일을 본다는 것을 큰 모순이라고 생각했다는 것만 말하겠다. 제롬은 그가 수도사들과 함께 있을 동안에 사제의 직분을 수행하는 것을 거절했고 자기는 사제들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 걸음 양보해서 묻고자 한다. 그들은 사제직의 어떤 부분을 실천하고 있는가? 몇몇 탁발 수도사들은 전도를 하고, 그 밖의 수도사들은 모두 자기의 방에서 성가를 부르거나 미사곡을 중얼거린다. 마치 사제들이 이런 목적을 위해서 임명되는 것을 그리스도께서 원하셨거나 사제직의 성격이 허락을 했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제의 임무는 자기의 교회를 다스리는 것이라고 성경이 명백하게 확인한다(20:28). 그러므로 이 임무를 다른 사람에게 옮긴다는 것,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제도를 완전히 변경한다는 것은 불경스러운 모독이 아닌가? 그들이 임명될 때, 하나님께서 모든 사제에게 명령하신 일들을 해서는 안 된다고 명백하게 금지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들려주는 노래는 이것이다 . 수도사는 자기의 수도원으로 만족하라. 성례전을 집행하거나 공적 직책에 속한 일을 하려고 주제넘은 짓을 하지 말라. 사제가 되면서 처음부터 사제의 진정한 직분은 다하지 않을 작정0?하고, 사제라는 이름은 가지면서도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노골적인 우롱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고 그들은 대답할 수 있는가?

 

9. 성직록을 받는 사제들과 고용살이를 하는 사제들

 

이제 세속 신부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그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그 들의 말대로 성직록을 받는다. , 사제로서의 생활비를 받는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미사를 집례하거나 성가를 부름으로써 매일 노동을 하여 이런 일에 대한 삯을 받아서 살아간다.

성직록을 받는 사람들 중에는 주교나 목사같이 영혼을 고치는 일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노래를 부르면서 생활하는 기품 있는 사람들도 있다. 성당 사제 참사회 의원, 교구 사제, 고위 성직자, 지도 신부 등등이 그 예다. 그러나 이미 일을 뒤집어 놓은 그들은 크고 작은 수도원들을 세속 사제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소년들에게도 준다. 그들은 이른바 "특권으로", , 일상 관습으로 이렇게 한다.

보수를 목적으로 고용된 사제들은 지금 하는 일 외에 어떤 일을 할 수 있겠는가? 특히 지금같이 전세계에 무수하게 퍼져 돈을 벌기 위해서 이기적이고 부끄러운 방법으로 자기 몸을 파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감히 내놓고 구걸할 수 없어서, 또는 그렇게 해서는 이익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굶주린 개같이 돌아다니면서 싫어하는 사람들을 졸라댄다. 개가 짖듯이 성가시게 굴어서 조금이라도 빼앗아 시장기를 면하려고 한다. 사제의 영예와 직책이 이렇게 된 것이 교회에 얼마나 큰 수치인가를 내가 말로 표현한다면 끝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극심한 악폐에 해당하는 논의를 독자는 나에게서 기대할 이유가 없다. 나는 간단하게 말한다. 하나님 말씀이 명령하고(고전 4:1, 10:1이하 참조) 고대 교회법이 요구한 대로 사제의 직책은 교회를 양육하며 그리스도의 영적인 나라를 섬기는 것이라면 미사를 파는 일만을 일삼거나 그것만으로 삯을 받는 이 모든 사제들은 그 직분을 다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할 합법적인 직분도 없다. 그들에게는 가르칠 곳이 없으며 다스릴 사람도 없다. 요약하면, 그들에게는 그리스도를 제물로 드리는 제단밖에 남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에게 드리고 있는 것이 아니고 귀신들에게 드리고 있다(고전 10:20 참조). 이 점은 다른 곳에서 알게 될 것이다.

 

10. 여러 가지 성직들의 겉치레

 

나는 외면적인 악폐는 이야기하지 않고 그들의 제도에 뿌리를 박은 내면적인 폐악만을 이야기한다. 나는 그들이 듣기 싫어하는 맡을 덧붙여 말하겠다. 사실이기 때문에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참사회 의원, 부주교, 부속 예배당 사제, 참사회 의장, 기타 하는 일이 없이 성직록을 먹는 자들은 모두 같은 종류라고 인정해야 한다. 그들이 교회를 어떻게 섬길 수 있는가? 그들은 말씀 선포와 권징의 엄수, 성례 집행을 귀찮은 짐이라고 해서 던져 버렸다. 진정한 장로라고 자랑할 무엇이 그들에게 남아 있는가? 노래가 있고 찬란한 의식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장로직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관습, 습관, 오랫동안 공인된 일들을 그들이 주장한다면 나는 그리스도께서 하신 정의와 대결시킬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어떤 것이 진정한 장로이며, 진정한 장로로 인정되고 싶은 사람은 어떤 자격이 있어야 하는가를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의 표준을 따르라는 이 어려운 요구에 그들이 응할 수 없다면 적어도 원시 교회의 권위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라. 그들의 현상을 고대 교회법에 따라서 판단하더라도 그들에게 유리하지 못할 것이다. 참사회 의원으로 타락한 자들은 옛날 장로들과 같이 감독과 공동으로 교회를 다스리며 그의 동료로서 목회하는 일을 돕는 것이 마땅하다. 그들의 이른바 "참사회"의 고위 성직자들은 진정한 교회 정치와는 아무 관계도 없다. 부속 예배당 사제와 그 밖의 쓸데없는 성직들도 적지 않다.

그러면 이 모든 자리들을 어떤 계급으로 간주해야 할 것인가? 그리스도의 말씀과 고대 교회의 관례는 확실히 그들을 장로의 직위에서 제외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장로로 자칭한다. 그러나 이 가면은 벗겨야 한다. 그들의 주장은 사도들이 설명하고 고대 교회가 요구한 장로직과는 완전히 이질적인 것이며 거리가 먼 것임을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이 모든 성직들은 그 이름이 무엇이든 간에 하나님이 제정하시거나 고대 교회의 관례가 옹호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새로 만들어낸 것이다. 따라서 주께서 친히 성별하시고 교회에 주신 영적 제도를 설명할 때에는 그들에게 어떤 자리도 주어서는 안 된다.

만일 그들이 내가 더 알기 쉽고 확실하게 말하기를 원한다면, 부속 예배당 사제와 참사회 의원 그리고 부주교와 참사회 의장과 그 밖의 무위도식하는 자들은 장로의 가장 중요한 직책에 새끼손가락 하나 대지 않는 자들이므로 그들이 이 명예를 도둑질하며 그리스도의 거룩한 제도를 침범하는 것을 우리는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주교와 목사와 부제들의 부패와 탐욕. 11-19)

 

11. 주교들과 교구 사제들

 

이제 주교들과 교구 사제들을 언급할 차례이다. 그들이 그 지위를 보존하도록 노력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나는 그들이 직분을 다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거룩하고 훌륭한 것임을 기꺼이 인정한다. 그러나 그들은 위임된 교회를 기만하고 교회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서 여전히 목자로 행세하려고 하며, 목자의 직무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한다. 시외에 나가 본 일이 없는 고리 대금업자를 농부나 포도원지기라고 하며 전쟁터와 병영만을 돌아다니고 법정이나 법률 서적은 본 일도 없는 사람을 변호사라고 한다면, 이런 어리석은 짓을 보고 누가 불쾌함을 금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더욱 우스운 것은 교회의 합법적인 목자로 인정을 받고자 하면서도 목자의 일은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자기 교회를 다스리는 체하는 사람조차 몇 명이 되는가? 일평생 교회의 수입을 받아먹으면서도 한 번도 그 교회를 돌아보려 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어떤 사람은 일 년에 한 번 자기가 오거나 사환을 보내서 자기 수입에 손해가 없도록 한다. 이런 부패가 처음으로 생기기 시작했을 때에는 이렇게 무위도식을 원하는 자들은 특권으로 의무를 면했다. 지금은 누구든지 자기 교회에서 사는 것이 희귀한 예외이다. 사환이나 소작인에게 농토를 맡기듯이 그들은 그들의 대리자들에게 교회를 맡긴다. 그러나 자기의 양을 한 마리도 본 일이 없는 사람이 양떼의 목자라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인정할 수 없는 생각이다.

 

12. 이 폐단의 초기 : 그레고리우스와 베르나르두스

 

이미 그레고리우스 시대에 이 폐단의 씨가 약간 있어서, 교회 지도자들이 점점 가르치는 일을 등한시하기 시작했다. 그가 강경하게 불만을 말한 것을 보아서 짐작할 수 있다. "세상에 사제들은 가득하지만 추수를 하는 사람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우리들은 사제직을 맡으면서 직분을 다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그들에게는 사랑이 없기 때문에 주인 노릇을 하고자 한다. 그들은 자기를 신부(아버지)라고 보지 않으며 겸손해야 할 곳을 교만한 주인의 자리로 바꾸어 버린다." , "그러나 목자들이여, 보수를 받으면서도 일은 하지 않는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우리는 보기에만 바쁘면서 맡은 일을 하지 않고 딴 짓을 한다. 전도하는 일을 버렸다. 주교라는 명예를 가졌으나 그 직책을 다할 능력이 없으니 우리가 받을 벌은 더욱 중하다. 단지 직책에 대한 성의와 노력이 부족한 사람들을 그레고리우스가 이렇게까지 엄격하게 책망했는데. 평생에 한 번 강단에 서는 주교가 거의 없거나 또는 몇 명밖에 되지 않고 다른 성직자들은 백에 하나도 되지 않는 것을 본다면 그는 무엇이라고 말할까? 지금 그들은 정신이 이상해져서, 신자들에게 설교한다는 것은 주교의 체면을 손상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베르나르두스 시대에는 사태가 더욱더 악화되어, 그는 이 계급 전체를 날카롭게 공격했다. 그러나 그 시대의 주교 계급은 지금보다 상당히 순수했던 것 같다.

 

13. 선전과 현실

 

그러나 현재 교황 제도 하에 있는 교회 제도의 외형을 잘 고찰한다면, 강도들의 소굴에서도 그렇게까지 법도 없고 체면도 없는 철면피한 난잡한 행동은 하지 않으리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참으로 거기서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것과는 다르고 이질적이며 고대 교회의 규정과 관례에서 타락했고 자연이나 이성과 모순되기 때문에, 이런 무질서한 제도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들이 지지하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최대의 타격이 된다. 그들은, 사도들의 권한이 그들에게까지 계승되었기 때문에 자신들은 교회의 기둥이요 종교 지도자요 그리스도의 대리요 신자들의 머리라고 말한다. 그들은 나무 조각에 대고 말하듯이 이런 미련한 말을 쉴 새 없이 끊임없이 지껄인다.

그러나 그들이 이런 자랑을 할 때마다 나는 그들과 사도들의 공통점은 무엇이냐고 반문한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사람이 잠자는 동안에 받을 수 있는 세습적인 작위가 아니라 그들이 한사코 도망하는 전도의 직분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들의 지배를 적그리스도의 독재라고 선언할 때에 그들은 의례히 그것은 위대하고 거룩한 분들이 자주 칭찬한 존엄한 성직제도라고 말한다. 저 거룩한 교부들은 교회의 성직제도, , 사도들에게서 그들에게까지 전해 내려온 영적 통치를 칭찬했으나 현대의 혼란 상태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교회가 혼돈하고 공허한 가운데서, 주교들은 대부분 무례한 바보들이며 믿음에 대한 초보적 상식도 이해하지 못하거나 유모에게서 방금 떨어진 덩치만 큰 아이들이다. 아주 예외적으로, 좀더 학식이 있는 주교가 있으면 그는 주교직을 호화찬란한 생활을 할 권리라고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의 교황 제도에서 교회 담당 신부들은 구두장이에게 밭을 갈 생각이 없는 것같이, 양떼를 먹이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다. 거기서는 모든 일이 바벨의 혼잡보다 더 심하며(11:9),교부들이 규정한 것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14. 사제들의 도덕 수준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들의 도덕 생활을 본다면, 그리스도께서 요구하신 "세상의 빛""세상의 소금"은 어디 있는가(5:14, 13) 인생의 영원한 지표라고 할 거룩함은 어디 있는가? 오늘날 무절제와 나약과 주색 등, 모든 정욕에 깊이 빠진 데 있어서 그들보다 더 이름난 계급은 없다. 그들처럼 온갖 기만과 사기와 반역과 배반에 능숙한 계급도 없다. 사람을 해하는 일에 그들같이 교묘하고 대담한 계급도 없다. 나는 그들의 거만과 자만과 탐욕과 잔인성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그들의 생활 전체가 방종한 데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세상은 이런 악폐에 진저리가 났으므로, 내가 부당하게 주장하는 것처럼 보일 위험성이 없다. 그러나 그들도 부정할 수 없는 일을 하나만 말하겠다. 만일 고대의 교회법에 따라 그들의 행위를 판단한다면, 파문을 면하거나 적어도 면직을 당하지 않을 주교가 거의 한사람도 없고 교구 신부들은 백에 하나도 없을 것이다. 나는 믿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것같이 생각된다. 그만큼 성직자들의 행위를 더욱 엄중하게 책망하라고 하던 옛날 규율은 폐물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사실이 완전히 그러하다. 로마 교황의 기치 아래에서 일하며 보호를 받는 사람들은 이제 가서 그들의 사제 계급을 서로 자랑하라. 그들에게 있는 이 계급은 분명히 그리스도에게서 온 것이 아니며, 사도들에게서나 교부들에게서나 고대 교회에서 온 것도 아니다.

 

15. 부제

 

이제 우리는 부제들과, 교회 재산을 처리하는 그들의 지극히 거룩한 임무를 보기로 하자. 그러나 로마 교회는 이런 목적으로 그들의 부제(집사에 해당하는)를 임명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부제에게 제단에서 봉사하거나 복음서를 읽거나 또는 노래하거나 그 밖의 사소한 일들을 시킬 뿐이다. 구제 물자 분배나 구제하는 일과 같은 그들이 옛날에 하던 일은 전연 없다. 나는 지금 제도에 대해서 말한다. 그들이 현재하고 있는 일을 보면 그것은 하나의 직분이라기보다는 사제가 되기 위한 단계에 불과하다. 미사에서 부제가 하는 일은 한 면에서는 고대를 흉내 내지만 내용은 없다. 그들은 성별하기 전에 제물을 받는다.

그러나 고대 교회의 관습은 신자들이 성만찬에 참석하기 전에 서로 입을 맞추고 성단에 구제 물자를 드렸다 이와 같이 그들은 자기들의 사랑을 먼저 상징적으로 표시하고 다음에 구제품으로 표시했다. 빈민들의 심부름꾼인 집사는 들어오는 것을 받았다가 분배했다. 지금 빈민들은 구제품을 바다에 던진 것같이 얻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거짓 부제직으로 교회를 희롱한다. 사도들이 제정한 것이나 고대 교회의 관습에 비할 것이 전혀 없다. 참으로 그들은 재산 분배를 다른 데로 옮겨서 상상할 수 없는 혼란을 일으켰다. 강도들이 사람의 목을 찌르고 강탈한 물건을 나누는 것과 같이, 이 사람들은 교회의 목을 찌르듯이 하나님 말씀의 빛을 꺼버린 다음에 거룩하게 쓰도록 봉헌한 물건은 모두 자기들이 나눌 전리품과 약탈품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것을 나누고 각각 힘 자라는 대로 많이 집어 갔다.

 

16. 교회 수입의 분배

 

내가 여기서 설명한 고대의 관습들은 혼란이 야기되었을 뿐 아니라 완전히 말소되고 은폐되었다. 이런 약탈품으로 부자가 된 도시 주교와 사제들이 참사회의 이익이 되면 약탈품의 대부분을 압수해서 자기들끼리 나눴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한계에 대한 싸움이 계속되는 것을 보면, 분배가 무질서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들이 어떤 결정을 했든지, 적어도 고대교회 수입의 절반이 빈민에게 가던 것이 지금은 한 푼도 가지 않게 만들었다. 교회법은 명백하게 사분지 일을 빈민들에게 배당하고 또 사분지 일을 감독에게 배당해서 손님 대접과 기타 자선 사업에 사용하게 했다. 성직자들이 자기의 배당금을 어떻게 처리하고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나는 말하지 않는다. 교회와 건물, 기타에 배당된 나머지도 필요한 때에는 빈민을 위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이미 충분히 설명했다. 그들의 가슴속에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들이 먹고 입는 것이 모두 도둑질한 것, 아니 신성 모독 행위에서 온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도 그들은 태연할 수 있느냐고 나는 묻고자 한다.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이지만, 적어도 그들이 속이려는 상대가 감각과 이성을 가진 사람들이란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들은 항상 교회 안에 아름답고 정연한 질서가 있다고 자랑한다. 부제직이 도둑질과 강도질을 하라는 면허인지를 간단하게 대답해 보라.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면 그들은 그들에게 부제직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는 교회 재산의 관리가 완전히 모독적인 약탈로 변해 버렸기 때문이다.

 

17. 교회의 참 광채와 거짓 광채

 

그러나 그들은 여기서 대단히 훌륭한 기만책을 쓴다. 그들은 교회의 위엄이 이런 장엄한 외관에 의해서 유지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 중의 어떤 자들을 시켜 노골적으로 파렴치한 자랑을 한다. , 사제 계급이 군왕들같이 호화롭게 보여야만 그리스도의 나라의 광채에 대해서 고대 예언자들이 예언한 것이 실현된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공연히 교회에 이런 일들을 약속하신 것이 아니라고 그들은 말한다. "다시스와 섬의 왕들이 공세를 바치며 스바와 시바 왕들이 예물을 드리리로다 만 왕이 그 앞에 부복하며"(72:10-11 주해 참조)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입을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52:1). "스바의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게달의 양 무리는 다 네게로 모여지고"(60:6-7). 내가 만일 그들의 후안무치함을 논박하는 데 시간을 많이 들인다면 나는 바보같이 될 것이다.

따라서 나는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겠다. 그러나 나는, 만일 어떤 유대인이 이런 말씀들을 악용한다면 그들은 무엇이라고 대답할 것인가를 묻는다. 물론 그의 어리석음을 책망할 것이며, 그리스도의 영적인 나라에 대해서 영적 의미로 한 말을 육과 세상에 옮겼다고 비난할 것이다. 이는 예언자들이 땅에 속한 물건을 사용하여 교회 안을 비춰야 할 하나님의 하늘 영광을 비유적으로 그렸다는 것을 우리는 알기 때문이다. 예언자들의 말에 있는 이 복들은 사도 시대의 교회에서 제일 빈약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나라의 권능은 그 때에 가장 풍성했다고 모든 사람이 인정한다. 그러면 이런 발언들의 뜻은 무엇인가? 어디 있든지 간에, 진귀하고 고상한 것은 모두 주에게 예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왕들에 대해서 명백히 한 말, , 그들이 그리스도에게 흘을 바치고 왕관을 그의 발아래 던지며 그들의 재물을 교회에 바치리라고 한 말이 데오도시우스 황제 시대에 같이 참으로 또 완전하게 실현된 일이 있는가? 그는 그의 자색 옷을 벗고 통치자의 표지를 내려놓은 후에 일반 신도의 한 사람으로서 하나님과 교회 앞에 부복해서 엄숙하게 참회했다. 그뿐 아니라, 그와 같은 경건한 다른 군주들도 교회의 교리를 순수하게 보존하며 건전한 교사들을 장려하고 보호하려고 노력과 주의를 기울인 때처럼 예언이 완전히 실현된 때가 있었는가? 그러나 그때의 사제들은 불필요한 재산이 많지 못했다는 것이 암브로시우스가주재한 아퀼레이아 종교 회의의 발표에 충분히 나타나 있다. "주의 사제들은 빈곤이 영광이다. 확실히 당시의 주교들은 재산이 있었고, 만일 외면적인 화려가 교회의 진정한 장식이 된다고 생각했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식탁의 진미와 화려한 옷과 많은 하인들과 웅장한 저택을 자랑하는 것은 목회자의 직책에 가장 배치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겸손과 검소의 길을 걸었으며 참으로 그리스도께서 그의 사역자들 사이에 제정하신 빈곤한 생활을 따른 것이다.

 

18. 교회 재산의 부정한 사용과 정직한 사용

 

이 점에 대해 시간을 많이 허비하지 않기 위해서, 그들이 현재 교회 재산을 처리하는 아니 낭비하는 방법이 하나님 말씀이 추천하며 고대 교회가 준수한 진정한 부제직에서 얼마나 멀어졌는가를 요약하려 한다. 중용을 지키라는 것은 거룩한 물건들의 논질이 요구하며 사도들과 거룩한 교부들이 교훈과 실천으로 명령한 것이다. 현대 교회에서 중용의 길을 볼 수 있는가? 고대의 검소는 말하지 않더라도 정직한 중용의 길을 일체 배척하고 있다. 극단적인 것, 부패한 현대 취미에 맞는 것만을 좋아한다. 동시에 살아 있는 성전들은 돌보지 않고 가장 작은 잔이나 병 한 개를 아껴서 수천 명의 빈민이 굶어 죽는 것을 버려둔다. 내 자신의 생각으로 가혹한 판단을 하지 않기 위해서 나는 경건한 독자에게 이 한 가지 일을 고려하기를 청한다. , 내가 이미 언급한 툴루즈의 엑수페리우스 주교나 아카키오스나 암브로시우스나 그밖에 그들과 비슷한 사람들이 지금 다시 살아난다면 그들은 무엇이라고 할 것이냐는 것이다. 물론 빈민들의 심한 곤궁을 보면서도 그들에게 불필요한 것인 듯이 돈을 다른 데로 빼돌리지 않을 것이다.(빈민이 없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돈을 쓰는 데에는 여러 가지 해독만이 있고 유익은 하나도 없다는 점은 여기서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사람들에 대한 문제를 더 언급하지 않겠다. 이 물질들은 그리스도에게 바친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뜻에 따라서 분배해야 한다. 그의 명령에 위반되는 일에 낭비한 이 부분을 그리스도의 것으로 계산하려 해도 그것은 허사일 것이다. 그러나 진상을 말한다면, 교회의 경상 수입에서 이런 일에 쓰는 부분은 많지 않다. 아무리 넉넉한 주교구와 대수도원일지라도 그리고 기증 재산이 풍부한 성직록을 아무리 많이 겸할지라도 사제들의 한없는 욕심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의 죄를 면하려고, 빈민에게 분배해야 할 것을 미신적인 일에 쓰도록 신자들을 유혹하여 교회를 지으며 조상을 세우며 그릇을 사며 예식 복을 준비한다. 이런 식으로 이 밑 없는 구렁이 일상 구제 물자를 삼켜버린다.

 

19. 성직자의 재산과 권력

 

그들이 농지와 소유 재산에서 받는 수입에 대해서, 내가 이미 말한 것 이외에 또 온 세상이 보는 것 이외에 무엇을 더 말할 것인가? 주교와 수도원장이라고 하는 자들이 수입의 대부분을 얼마나 충실하게 처리하는가를 우리는 안다. 여기서 교회의 질서를 찾아보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미련한 일인가? 검소와 중용과 절제와 겸손의 모범을 보여야 할 사람들이 세상 집권자들에게 옹호하지 않겠다고 고용인의 수효를 늘리고 찬란한 건물과 화려한 의복과 빈번한 연회에 경비를 들였으니 이것이 합당한 일인가? 더러운 이()를 탐하지 말며 간단한 음식으로 만족하라는 하나님의 영원불변한 명령을 받은 사람들이(1:7) 촌락과 큰 저택들을 점령할 뿐 아니라 큰 지방과 온 나라들까지도 빼앗았으니 이 얼마나 그들의 직무에 배치되는 것인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한다면 고대 종교 회의들의 결정에 대해서는 무엇이라고 대답할 것인가? 그 회의들에서는 감독이 자기 교회에서 멀지 않은 작은 집에서 살며 값싼 음식을 먹고 값싼 가구를 사용하라고 했다. 주의 사제들은 가난한 것이 영광이라고 한 아퀼레이아 종교 회의의 발표에 대해서 그들은 무엇이라고 대답하겠는가? 제롬이 네포티아누스에게, 가난한 사람들과 모르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손님으로서 그의 작은 식탁에 자주 앉아야 한다고 한 명령을 그들은 너무 엄격하다고 해서 거부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제롬이 곧 첨가한 말에는 부끄러워 반대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주교의 영광은 빈민을 돌보는 것이며 모든 사제의 수치는 재산을 모으려고 애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이 이 말을 받아들인다면 반드시 자기들의 수치를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이 점을 추궁할 필요가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들 사이에 합법적인 부제직이 없어진 지 오래라는 것을 밝히는 것뿐이며 이로써 그들이 교회의 한 미점이라고 해서 부제직을 자랑하는 것을 더 이상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나는 이 목적을 달성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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