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설교 / 브라이언채플
제 1편 강해 설교의 원리
제 1장 말씀의 증거
하나님의 말씀은 무한하기 때문에 개인의 소유물이 될 수 없으며, 그 풍요함을 함께 나눌 때 말씀이 지닌 고귀한 목적도 달성할 수 있다. 설교가 고귀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성경 연구에만 몰두하던 학생들도 위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설교자로서의 능력을 의심하게 되고, 점차 설교의 역동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생기기 시작할 때, 설교자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영적으로 변화시키려는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설교자의 인간적인 능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갖는 영적 능력을 통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는 창조하는 능력, 통제하는 능력, 설득하는 능력,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는 능력,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능력이 있다. 성경이 이런 능력을 갖고 있다는 구절을 대할 때마다 우리는 자신의 설교행위를 통해서 천국의 목적이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설교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신약에서 자기 아들을 로고스, 즉 말씀이라고 선포한 부분에서 말씀이 갖고 있는 역동적이 능력을 분명하게 나타내셨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말씀 안에서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고, 또 그 말씀을 통해서 능력이 작용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갖고 있는 이런 능력이 사도 바울의 선교에서 완벽하게 나타난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이라고 기록했다. 이 구절에서 ‘능력’이란 말은 헬라어로 dunamis인데, 이 단어에서 영어의 ‘역동적(dynamic)’이란 말이 파생되었다. 복음의 힘은 설교자의 능력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바깥에 있다. 바울이 전도를 미련하다고 말한 것은, 단순히 사람의 말로는 그들의 태도나 삶의 방식, 철학적 관점, 그리고 헌신적인 신앙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설교가 계속되는 동안 복음은 전파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미약한 인간의 노력 속에 말씀의 능력을 부여하시기 때문이다. 설교자가 말씀이 지닌 능력을 깨닫게 되면, 자신의 소명에 대한 확신이 생기고, 심지어 자신의 일에 성과가 없어도 낙담하지 않는다. 우리가 진의 말씀을 전할 때, 하나님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말씀에 능력을 부여하기 때문에, 우리는 무능하다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강해설교는 사람들의 영혼을 변화시키는 말씀 앞에서 설교자와 성도들을 하나로 묶어준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면 그 마음이 변화하기 때문에, 강해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어떠하든지 그대로 전하려고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된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고’고 칭찬하였으며, 덧붙여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한다’고 했다. 성경의 주장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사실이며, 이것이 또한 강해 설교의 대 전제가 된다. 우리의 임무는 하나님이 성경에서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일이다. 설교자가 성경을 진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에게 이 말씀을 전할 권리가 있는가 하는 의문은 사라진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그들이 믿어야 할 것과 행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하나님이 갖고 계신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실 수 있다. 말씀을 선포할 때, 우리는 성령의 역사하시는 능력을 다른 사람의 삶 속으로 전해준다. 우리의 성교에 가장 큰 자극과 격려가 되는 것은 말씀의 진리이며, 우리가 노력한 만큼의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진리 대문이다. 성령께서 우리의 입술을 사용하시지만, 인간의 의지를 바꾸는 것은 인간의 역사가 아니라 성령의 역사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이 역사한다고 해서, 설교자에게 아무런 책임도 없는 것은 아니다. 사도 바울은 말씀의 내재적 능력에 대해서 가르치면서도, 다른 사람의 길에 복음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놓지 않겠다는 결심을 표명했다. 고대 수사학에서 설득력 있는 연설의 세 가지 요소로 logos(논리), pathos(감정), ethos(성품)로 말한다. 비록 아리스토텔레스와 용어는 다르지만, 바울의 구별도 같은 내용이었다. 즉 바울도, 만약 설교자가 심성과 인품이 연설의 내용을 뒷받침해주지 않는다면, 아무리 말하는 시술이 뛰어나도 그 연설은 설득력이 없다고 말한다. 말씀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서는 ethos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성경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설교자의 성품이 설교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성경의 말씀에 따라 살아야 한다. 그렇다고 은혜를 무시한 채 설교자의 성품만 강조하는 것은 무익할 뿐만 아니라 잘못된 생각이다. 왜냐하면 은혜를 통해서 설교자의 성품과 메시지를 하나님의 뜻에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능력을 주신다는 사실을 자각했다면, 설교자는 자신의 소명에 전적으로 헌신해야 한다. 만약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라면, 예수님과 그의 말씀에 충실함으로써 훌륭한 설교자가 될 수 있다.
제 2장 설교의 의무
사실적인 내용, 바벨론 성벽의 높이는 350피트이고 넓이는 80피트였다. 골로새의 영지주의는 극단적인 쾌락주의와 금욕주의의 요소를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빌립보서 2장 7절의 ‘비운다’는 개념은 헬라어로 ‘kenosis’이다, 위의 진술은 명백하고 사실적이며 성경적이다. 그러나 이런 것은 설교의 내용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설명에는 통일성이 없고, 어떤 목적이나 의도를 갖고 있지 않을뿐더러 적용할 만한 지침을 제시해 주지 않는다. 명백한 사실, 심지어 그것이 성경에 근거한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자동적으로 성도들을 위한 메시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설교에는 신학적인 개념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된 예화와 확증하는 사실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설교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가 이렇게 많다고 해서, 수많은 사실을 열거하는 것이 설교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한 가지 주제가 여러 사실을 하나의 설교로 결집시켜 줄 뿐만 아니라 청중에게도 오래 기억될 수 있게 해준다. 설교의 구성요소들은 전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중심사상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성경은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지만, 이런 많은 가능성들을 청중이 이해하기 쉬운 설교로 만들기 위해서는 통일성이 필요하다. 하나의 성경 본문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주석이나 문법적인 분석이 가능하며, 하나님의 말씀은 그 깊이가 무한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설교의 영감을 평생 동안 제공해 줄 수 있다. 또한 설교는 읽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다. 설교 중에는 그 내용을 깊이 음미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매우 적다. 그래서 설교의 각 부분이 주제와 명백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청중은 오랜 시간 그 내용에 주의를 집중시킬 수 없다. 여러 가지 사상이 한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잘 조합되어 있을 때, 청중은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강해설교에서 통일성이란, 설교의 각 부분이 한 가지 중심 사상을 지지할 때 가능하다. 여기에서 한 가지 중심 사상이 곧 설교의 주제가 된다. 설교에서는 성경의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 중심 사상, 혹은 저자의 목적을 정확하게 나타내며, 또한 하나님의 진리를 전달해야 한다. 설교자가 통일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면, 설교의 구성요소가 한 가지 중심 사상을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을 때, 그리고 오늘 설교 주제가 무엇인지 묻는 갑작스런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 때, 설교자는 자신이 통일성을 갖추었다고 확신할 수 있다. 통일성의 목적은 단순히 성경 진리를 찾아내어 요약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진리를 청중에게 잘 전달하는 데 있다. 통일성은 관련도 없는 여러 사상을 마구 쏟아 붓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 가지 주제를 강조 할 수 있도록 설교문을 작성하는 것을 말한다.
성경 저자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명확하게 깨달았다고 해서 설교의 주제를 정하는 일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성경 본문의 원인과 이유를 파악하기 전 까지는 설교의 주제를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할 수 없다. 설교자들은 성경 본문에서 하나의 주제를 찾으면 설교준비를 다 갖추었다고 생각한다. 즉 성경본문의 목적과 의도를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단지 주제만 발견하면 설교 준비를 다 끝냈다고 생각한다. 설교의 주제를 파악하기 전에, 먼저 성경 본문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왜 쓰여졌는지 알아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온전하게 하기위해서 성경을 주셨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다. 성경이 우리의 타락한 상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FCF : The fallen Condition Focus)는 사실을 확신할 때, 우리는 소망을 가질 수 있다. 하나님은 연약하고 죄 많은 자녀들을 영적 행복과는 상반되는 이 세상에서 인도자나 보호막이 없이 내버려 두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이런 타락한 상황가운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모든 성경 구절 속에 근본적으로 깔려있기 때문에, 훌륭한 설교를 하려면 성경 본문에 갈려 있는 이런 의도를 밝히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성경 본문의 FCF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그 구절에 관련된 사실을 아무리 많이 알고 있어도, 그 구절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 지 완벽하게 깨달았다고 할 수 없다. 성령이 그 본문을 쓴 목적이 바로 FCF이기 때문에, 우리가 말씀 안에 나타난 이런 뜻을 확인 할 수 있을 때가지 설교를 행해서는 안 될 것이다. FCF를 구체적으로 제기하는 것은 성경이 현실적인 관심사에 대해서 대답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함으로써 효과적인 설교를 할 수 있며, 청중의 관심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설교자의 성품과 청중이 처해있는 상황, 그리고 설교의 강조점에 따라서 FCF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설교자는 자신의 설교의 목적이 본문에 포함되어 있는 여러 가지 목적 중의 하나인지 확인해 보아야 한다.
성경 본문의 FCF가 청중의 현 상황과 동일하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자연히 설교자는 성경에서 제시하고 있는 해결책과 교훈을 현 생활에 적용하기 위해서 숙고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FCF를 현실로 이끌어내는 설교를 하기 위해서는 적용이 필요하다. 성경의 교훈과 모범은 설교에서 적용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바울은 디도가 자신이 배운 ‘바른교훈’을 사람들에게 전할 때, 그들이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해 주기를 원했다. 바울은 인사말로 시작해서 교리적인 교훈을 설명하고, 그 다음에 그 교리를 다양한 삶의 상황에 적용시킨다. 그는 자신의 메시지를 사람들의 삶에 구체적인 모습으로 심어주려고 했다. 우리가 설교를 할 때에도 이것이 가장 큰 목적이 되어야 한다. 설교자는 FCF를 분명하게 제시함으로써 자신의 설교를 그리스도 중심으로 만들 수 있고, 적용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반대로, 제대로 적용이 되지 않은 설교는 절대로 훌륭한 설교가 될 수 없다. 설교는 문법 수업이 안이다. 설교자가 본문의 내용과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후에, 그것을 중심이 되는 한 가지 FCF에 적용시키지 않는 한, 그 설교는 완성된 설교라고 할 수 없다.
제 3장 설교 본문의 선택
성경 본문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설교자의 의견이 최우선이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설교자는 자신에게 할당된 설교 시간 안에 소화시킬 수 있는 본문을 선택해야 한다. 교수들은 강해설교에서 다루게 되는 성경의 한 단락을 강해 단위라고 했다. 이요어의 장점은, ‘단위’라는 개념을 통해서 설교자들이 성경 구절을 서로 연속성이 없는 여러 구절을 나열한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통일성이 있는 사상을 모았다고 볼 수 있다. 강해 설교는 성경에서 구분해 놓은 한 단락보다 훨씬 더 짧거나 긴 구절들을 설교 본문으로 선택할 수 있다. 또한 단위 개념을 통해서, 설교자는 특정한 해석에 의해서 구분된 단락이나 절에 구애를 받지 않을 수 있다. 단점으로는 강해 단위라는 용어를 단순히 ‘사상의 한 단락’이라는 말로 받아 들였을 대, 설교자의 통찰력을 제한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설교자에게 할당된 설교 시간도 성경 본문을 선택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문화, 교회, 그리고 성도들에 다라서 설교의 길이도 다양해진다. 존 스토트는 ‘모든 설교는 20분보다 훨씬 더 긴 설교라도 20분짜리 설교로 느껴질 수 있어야한다’라고 말함으로써 설교의 길이에 대한 문제를 교묘하게 회피했다. 성도들의 수준과 상관없이, 설교자는 정해진 시간 내에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길이의 본문을 선택해야 한다. 특별한 시기나 성도들의 성형, 교회조직, 사역의 목적, 예배순서, 교회가 겪어온 변화, 교육수준, 그리고 영적성숙도 등이 성경 본문을 선택하고 설교의 길이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아마도 설교자가 설교의 목적을 명심하고 있을 때, 본문의 길이나 그에 상응하는 설교의 길이를 가장 잘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설교란 그 길이가 너무 짧아서 하나님의 말씀이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해서도 안되며, 너무 길어서 예배를 무거운 짐처럼 느끼게 해서도 안된다.
평소에 흥미를 가지고 있거나, 자신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성경구절을 본문으로 삼아 설교하는 것은 본문을 해석하는 훈련을 하는 좋은 방법이 된다. 설교자가 먼저 성경본문을 통해서 자극과 감동을 받았다면, 설교를 통하여 열정을 다 할 수 있을 것이며, 훨씬 던 쉽게 사람들을 자극하거나 감동시킬 수 있을 것이다. 목사는 설교 본문을 선택할 때 성도들의 관심사도 고려해야 한다. 목사가 성도들이 직명하고 있는 세상을 무시한 채 목회를 한다면, 그것은 거룩한 체하는 속임수에 불과하다. 경험이 많은 설교자는 일 년에 한 번씩 과거에 자신이 어떤 설교를 했는지, 그리고 성도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되돌아보고, 곧이어 성도들이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성도들이 경험하게 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그 관점에서 어떤 내용의 설교를 해야 할지 계획한다. 많은 설교자들이 여름철을 이용해서 다음해 일 년 동안의 설교 계획을 세우려고 노력한다. 설교한 본문과 주제에 대해서 미리 파악하고 있으면 각각의 설교의 질이 더 향상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 해 동안의 설교 계획을 미리 적어 놓은 파일은 자석과 같은 힘이 있어서 설교자가 읽는 책이나 생활 속에서 설교와 관련된 생각을 이끌어 내게 된다.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통찰력이나 설교 주제와 관련이 있는 인용문, 신문 기사 스크랩, 성경 본문에 대한 새로운 해석, 예화, 그리고 설교 개요가 몇주간에 걸쳐 설교계획 파일에 첨가되고 결국 그 주일의 설교를 준비할 때 쯤 되면 막대한 양의 자료를 손에 넣게 된다.
설교자가 본문을 조화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정평이 나 있는 선택법 중에 하나가 바로 연속설교이다. 연속설교는 설교자가 본문의 사건을 통해서 자신이 생각해 낼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있고 교회가 안고 있는 민감한 문제를 직접 지적하지 않고서도 그런 문제에 대해 말할 수 있으며 본문을 선택하기 위해서, 본문에 대한 조사를 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연속설교는 설교자가 그 과정을 적절하게 진척시키지 못할 때 가장 큰 부담이 된다. 또한 설교자가 지난 번 설교와 연관시키는 경우에 문제가 된다. 연속설교는 그 주제를 계속해서 몇 주 동안 설교할 이유가 충분할 때, 연속적이긴 하지만 각각의 설교가 서로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일 때, 혹은 그 주제나 접근 방법이 최근에 했던 연속 설교와 뚜렷한 차이가 날 때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주제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촉진제가 되는 몇 가지가 있다. 자신이 잘 아는 본문을 선택하는 것, 절기별 설교, 어떤 특별한 상황에 처했을 때 그 상황에서 필요한 교훈이나 지혜를 얻기 위한 것, 기독교인들이 직면하고 있거나 대처해야 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 찬송가, 신앙고백서, 다른 사람의 설교,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느끼는 것들이다. 설교본문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다음과 같은 기본 지침을 기억해야 한다. 친숙한 본문이라고 해서 피하지 말라, 의미가 분명치 않은 본문을 찾지 말라, 어떤 본문이든지 의도적으로 피하지 말라, 정경이 아닌 본문은 선택하지 말라.
일단 설교 본문을 선택했다면, 또 하나의 선택과정으로서 그 본문을 정확하게 해석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싶어한다. 그 방법으로는 한권의 좋은 주석 성경을 선택하는 것보다 더 용이하고 효율적인 해석 도구는 없으며 성경의 원어를 통해서 본문의 의미를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설교자들은 가까이에 사전을 두고 있을 것이다. 또한 특정 본문을 연구하다 보면, 다른 성경 본문에서 보았던 단어를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을 것이다. 때때로 우리는 특정 주제를 성경 어느 곳에서 다루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성구사전을 사용한다. 설교자들은 번역 전문가들이 같은 본문을 각자 어떻게 번역했는지 비교해봄으로서 원문의 뉘앙스를 식별할 수도 있다. 몇몇 출판사에서는 성경에 나오는 용어나 개념, 장소, 의식에 관해서 정의를 내리고 설명할 뿐 아니라 그 배경과 연대표까지 소개하는 참고서를 내놓았다. 이런 것들을 참고하면 본문을 정확하게 해석했다는 사실을 확인해 볼 수 있다.
본문을 해석할 때 좋은 방법을 사용하려고 애쓰는 것은 성경에 대해서 진실해지려는 설교자의 기본 의무라고 할 수 있다. 강해 설교는 본문이 갖고 있는 정확한 의미를 성경 저자가 의도했던 대로, 혹은 다른 영감된 자료에 의해서 밝혀진 대로 증거하는 것이다. 문자적인 해석이란 성경저자의 말이 본문의 상황을 뛰어 넘어 무슨 의미를 갖는지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성경 저자가 한 말의 뜻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것이다. 설교자의 임무는 본문의 문법적 특성과 함께 그 배경을 연구함으로써 성경 저자가 어떤 말을 하려고 했는지 알아 내는 것이다. 본문의 원 뜻을 찾아내기 위해서 문법과 역사를 이용하는 것을 문법적-역사적 방법이라고 한다. 해석을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는 본문의 의미를 밝히는 것 뿐만 아니라, 본문이 좀 더 넓은 맥락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도 밝혀야 한다. 설교 본문을 정했다면, 성경 저자가 어떤 의도로 그런 말을 했는지 정확하게 알아보기 위해서 그 본문의 내용 뿐만 아니라 전후의 내용까지 살펴보아야 한다. 전후 상황을 무시하고 성경 한 구정만을 내세워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모습을 본문의 원 뜻을 무시한 채 성경을 이용하는 기독교 대중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본문의 상황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본문이 쓰여진 문학적 양식, 즉 그 유형을 살펴보는 것도 필요하다. 본문의 의미를 결정할 때에는, 본문의 전후 상황을 살펴보는 것 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에서 분문이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상황을 고려한다는 것은 설교 본문을 성경 전체에 흐르고 있는 구속적인 메시지의 관점에서 숙고한다는 듯이다. 우리는 자신이 선택한 성경 본문이 성경 전체의 궁극적인 메시지, 즉 그리스도의 사역을 설명하고 준비하고, 혹은 재연하는데 있어서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제 4장 강해의 구성 요소
강해 설교자와 그 설교를 듣는 성도들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성경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매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강해설교는 단순히 성경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성도들의 삶에서 성경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설명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설교의 모든 요소를 하나의 지렛대로 이용해서 성도들에게 정보를 주는 것이 강해설교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진정한 강해설교란 설교의 모든 요소를 이용해서 사람들이 말씀의 진리를 적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즉 설교자가 설교의 각 요소를 하나의 지렛대로 사용해서, 자신이 제공하는 정보는 성도들에게 지식으로 쌓여가고, 본문의 가르침은 성도들이 삶의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예수님이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성경을 어떻게 가르쳐 주셨는지 살펴봄으로써, 설교의 임무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말씀의 의미를 설명하고 풀어 보여 주는 것이 설교자의 임무이며, 나아가 강해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가 보여준 모범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서 자신의 언어와 하나님의 율법을 잊어버렸다가 해방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접하게 되는 장면인 느헤미야에서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말씀의 강해는 세 가지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말씀의 소개(낭독), 말씀의 설명(해석), 그리고 말씀에 기초한 훈계 즉, 말씀 자체와 그 말씀의 내용을 설명하는 것, 그리고 그 진리를 적용하도록 훈계하는 것 들이 설교의 구성 요소였다. 하지만 성경에 기록된 설교에서 주목할 만한 형태가 이런 요소들로만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 요소가 항상 분명하고 균일하게 나타났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들 요소가 성경의 일관된 입장인 것만은 확실하기 때문에, 설교자들은 자신의 설교가 성경에 나타난 이 요소들을 잘 반영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 요소들의 순서에 어떤 규범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진리를 해석하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이들 요소들이 성경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다. 말씀의 소개, 말씀의 설명, 그리고 말씀의 의미에 기초한 훈계, 이것이 곧 강해설교이다.
강해는 단순히 성경의 내용을 전달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요구하시는 믿음이나 행동의 기초, 다시 말해서 성경적인 기초를 확립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이렇게 강해의 취지를 완벽하게 이해하게 되면 강해설교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 강해설교의 목적은 성경을 정보 제공자로 만들뿐만 아니라 유용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설교학자들은 설교를 기본적인 세 가지 구성요소로 나눈다. 설명(본문에 대한 개요와 설명), 예화(본문의 내용에 대한 증명), 적용(본문의 의미와 관련이 있는 행동이나 태도), 이것은 학생들에게 다른 사람의 설교를 상세히 분석하고 자신의 설교를 작성하는 방법을 가르칠 때 매우 도움이 되는 구분법이다. 우리는 설교를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설명 행위로 제한시켜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설교는 강해이기 때문이다. 성경의 진리를 설교자가 예화를 들어 증명할 수 없다면, 성도들은 그 진리를 확신할 수 없다. 그리고 성경의 내용을 설교자가 적용할 수 없다면, 성도들은 그 내용을 삶에서 순종하며 실천할 수 없다.
성도들이 단순히 설교자의 명령이나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본문의 의미를 자신의 삶에서 개인적으로 깨닫게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 설교자는 자신의 설교를 다른 관점에서 평가하게 된다. 즉 성도들에게 지식을 줄 뿐만 아니라 그들이 그것을 이용할 수 있게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관점에서 자신의 설교를 평가하는 것이다. 청중의 성격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설교자의 설교도 그 성격에 따라 각각의 구성 요소의 비율을 달리해야 한다. 그러나, 각 회중의 특성을 유형화시키는 것은 상투적이고 고정 관념에 불과할 수도 있으므로, 이것이 상식보다 앞서서는 안될 것이다. 설교의 구성 요소들이 서로 배타적인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에, 설명은 정신에 대한 준비이며, 예화는 마음, 그리고 적용은 하나님께 복종하겠다는 의지에 대한 준비라고 생각하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설교를 하는 데 있어서 각각의 구성 요소들이 얼마나 비중을 하지 해야 하는지 엄격하게 정해진 규율은 없다. 이 말은 우리가 조금만 노력하면 설교를 완벽하게 작성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설교자는 설교 준비를 할 대 다음과 같은 설교의 진행 과정을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선포하다, 도달하다, 각자에게’ 이런 진형 과정은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곧 우리가 자신의 학문적 지식을 강조하거나 인기를 의식한 설교를 해서는 안된다고 말해 준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 성경에서 명령하고 있는 것처럼, 설교자들은 ‘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설교를 해야한다. 권위가 없는 설교를 듣게 되면, 성도들은 하나님의 목소리를 갈망하게 된다. 목사가 성경의 진리를 확신하고 있다면 그의 설교는 힘이 있고 부드러우면서도 권위를 지닐 것이다. 성경 저자의 의도를 밝혀내는 것이 강해의 원칙이기 때문에 우리는 본문에서 제시하고 있는 진리나 상황에 어울리는 말을 사용해야 한다. 원어 성경을 보면 설교자나 설교가 관련된 용어가 매우 다양한데, 이것은 우리들의 표현도 다양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그리스도와 우리 자신과의 관계를 통해서 볼 때, 우리는 사람들을 대할 때 연민의 마음 뿐만 아니라 말씀의 권위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도 어떤 대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단호하게 이끌어 주길 바라고, 또 어떤 이는 사랑스럽게 안아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우리가 강단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도 그렇다. 설교를 가리켜 본문을 해석하는 봉사의 행위라고 하는 것은 설교자의 어조가 권위적이면서도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른사람의 권위 아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우리의 설교가 하나님 앞에 진실된 것이 되려면, 우리의 말이 그의 진리 뿐만 아니라 그의 성품가지도 그대로 나타내는 것이어야 한다.
제 2편 강해 설교의 준비
제 5장 설명의 과정
사람들은 말씀의 진리를 개인적으로 직접 직면했을 때만 영적으로 변화될 수 있기 때문에, 설교하기가 어렵고 복잡해진다. 성경에는 미로를 통과해야지만 진리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전문지식을 가진 영적 엘리트만이 통과할 수 있는 좁고 어두운 복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설교자가 작은 불빛 하나만 비춰주면 누구든지 따라 갈 수 있는 평범한 길이 있을 분이다. 강해설교한 본문을 이해해 나가는 과정 속에 작은 불빛 하나를 비춰주는 것과 같다.
설교자는 설교를 준비하면서 중요한 몇 가지 질문에 대답해 봄으로써, 앞으로의 강해 과정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 있다. (1) 본문의 의미는 무엇인가? (2) 본문의 의미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3) 본문이 기록된 상황은 무엇인가? (4) 우리와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5) 본문의 진리에 대해서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6) 본문의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많은 설교자들은 본문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으로 설교 준비가 끝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FCF(타락한 상황에 초점 맞추기)라는 개념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본문의 인물과 우리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설명함으로써, 우리는 본문의 진리를 성도들의 현재의 삶으로 직접 갖다줄 수 있다. 만약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의도하신 효과를 성경에서 빼앗아 버리는 것과 같다. 설교는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 일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다. 사람들이 진리의 의미를 현재의 삶에서 인식하고 실천할 때, 그 진리는 살아서 강력한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설교자들은 설교를 준비하면서 네 가지 단계를 거쳐야 한다. 첫째로 본문을 철저히 관찰하는 것이다. 잘 모르는 단어, 이름, 장소를 찾아보고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주의깊게 관찰하여야 한다. 말씀의 주변 세부 사항들을 무시함으로 본문 전체를 오역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 성경을 읽어야 한다. 다음으로 질문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본문의 내용에 점점 정통해질수록 본문의 의미가 무엇을 말하는지, 자신이 어떻게 의미를 도출하였는지 등의 질문들을 거쳐야 한다. 본문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질문하면서 단어의 배치, 시제, 구조, 반복, 다른 단어와의 관계성 등에 대해서 연구할 수 있다. 번역본들의 비교를 통해서도 깊은 의미를 도출해낼 수 있다. 문법적 도해는 단어들이 문장 속에서 어떤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 오역을 피해주고 단어의 전개과정을 살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문장구조의 분석을 통해서도 본문의 사상의 전개과정을 살필 수 있다. 그리고 당시의 배경상황을 충분히 이해함을 통해 성경 본문을 역사적, 논리적, 문학적인 맥락에서 함께 생각하여야 한다. 셋째로 성도들과 관련지어야 한다. 항상 성도들의 입장에 서서 질문을 해보고 설교자의 말, 단어가 성도들에게 쉬운가를 살피고, 성도들의 관심사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인지도 주의깊게 살펴야 한다. 그리고 설교자는 성도들이 처해 있는 입장에서 본문의 진리를 유화시키거나 변조하고 싶은 유혹도 경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강해자는 본문 전체를 능률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설명의 순서를 정해야 하고, 본문의 범위, 어느 내용을 중심내용으로 사용하고 어떻게 부수적인 내용으로 뒷받침 할 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본문의 골격 세우기를 통해 설교 전체의 윤곽을 그려야 한다. 본문의 순서를 그대로 따를 것인지, 어떠한 부분을 강조하고 반복할 지 등에 대해서 고려하여야 한다.
설교자들은 자신의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진리가 복잡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분명하게 전달될 수 있다고 믿어야 하며, 이런 믿음을 현실로 만들려면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사용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심오한 문제를 애매모호하게 말하는 것이나, 간단한 문제를 분명하게 말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심오한 문제를 간단하게 말하는 것은 설교자로서의 재능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자신을 이용해서 그 말씀에 더 밝은 빛을 비추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우리의 말이 성경 말씀 전체를 비춰주는 데까지 나아갔을 때, 비로소 이 기도가 응답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제 6장 개요와 구조
설교 전체의 개요를 작성하는 과정을 통해 본문의 진리에 충실하면서도 성도들의 욕구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훌륭한 설교를 만들어낼 수 있다. 본문에 대한 주해적 개요를 통해서 본문의 사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 수 있고, 설교의 개요를 통해서 설교자가 자신의 사상을 전체적으로 어떻게 전개시켜 나가는지 알 수 있다. 강해설교를 위해서는 성경을 해석할 때 설교의 대지와 소지를 모두 본문에서 이끌어 내야 하며, 이 요점들이 저자의 사상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본문의 범위를 모두 포함하고 있어야 하며, 또한 성도들이 자신의 삶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개요는 모든 사람들이 따라 가는 정신적인 지도 역할을 한다. 개요가 잘 잡혀 있지 않다면 설교가 난잡하고 혼란스럽다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훌륭한 설교가 되기 위해서는 항상 어떤 구조가 꼭 필요하다. 훌륭한 개요는 청중들이 설교의 개요에 주목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단지 설교 내용만을 따라가게 만드는 것이다.
좋은 개요는 각각의 요소가 한 가지 내용에만 관련을 맺고 있다. 요점은 가능하면 간결하게 진술하도록 하여야 한다. 그리고 대지들이 서로 밀접한 연관을 지을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중심 단어는 일치하게 사용하고 뒷받침하는 중요 내용들의 핵심 단어를 변화시키면서 대구를 이룬다면 청중은 생각을 집중시키기 쉬울 것이다. 대구법을 능숙하게 사용하면 메시지의 개요를 명백하게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각각의 대지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내용을 비슷한 비율로 맞추는 것도 중요하다. 동시에 뒤로 갈수록 점점 더 짧은 요소를 놓는 것이 필요하다. 대지가 개념상으로나 용어상으로 서로 반복되는 것처럼 보여서도 안된다. 모든 요점들을 분명하게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설교자가 결론 부분으로 나아가면서 지속적으로 긴장을 조성해나가는 것도 청중들의 호기심과 흥미를 끌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목사가 설교의 개요를 작성하는 것은 설교의 각 부분의 순서를 정하고 그 비율을 할당할 때에도 도움이 된다. 그래서 목사는 설교의 각 요소가 모두 하나의 중심 사상과 연결이 되어 있는지 한눈에 가늠해볼 수 있다. 동시에 개요는 중심 사상을 뒷받침하는 설명이나 적용, 예화들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그리고 이런 요소들의 비율이 각각 얼마나 되는지 가시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개요가 설교자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유익은 설교자가 이런 구성을 통해서 성도들로부터 신뢰성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즉 개요를 통해서 설교의 내용이 잘 전달될 뿐만 아니라 목사의 능력과 특성도 그대로 나타난다.
중요한 것은 논지가 근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즉, 설교자는 논지가 설교의 내용을 농축한 것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강해 설교는 "본문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래서 어떻게 하란 말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므로, 논지 역시 진리의 내용과 아울러 성도들이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 보여 주어야 한다. 이런 목적은 형식적으로 보편적인 진리와 적용을 함께 결합시킬 때 이룰 수 있다. 논지는 성경의 진리를 제시하면서 적용을 위한 토대도 마련해 주어야 한다는 관점만 제대로 인식한다면 일반적인 형식에 벗어나더라도 얼마든지 훌륭한 논지를 제시할 수 있다.
제 7장 예화의 형태
본문의 내용을 설명하고 증명하며 논증하는 것만으로도 설교의 학구적인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지만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능력있는 설교는 본문의 진리를 증명하고 적용함으로써 그 진리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전통적인 강해 메시지는 각각의 대지마다 설명과 함께 예화와 적용을 제시함으로 이런 목적을 성취한다. 예화는 설교의 진리를 어느 정도 대변하고 있는 짧은 일화로 설명을 발전시키는 경험의 이야기로서 청중을 그 경험에 동화되게 만든다. 청중은 예화를 통해 상상으로 설교의 진리를 경험할 수 있다. 설교를 할 때 예화를 제시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유감스러워 하는 설교자가 있다. 그러나 예화는 설교가 너무 추상적이고 전문어 투성이며 현실과 관련이 없다는 지적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다. 영상을 많이 접하게 되어있고 영상에 익숙해진 현대의 문화에 속한 성도들에게 예화는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찰스 스펄젼이나 피터 마샬 등의 많은 뛰어난 설교자들의 설교에서 설득력 있는 예화가 설교에 쓰여졌을 때 얼마나 효과적이었는가를 통해서도 예시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경험이 배제된 지식들을 받아들이기 싫어하는 사람들의 인식에게도 예화는 도움이 된다. 또한 성경의 예수님 역시 비유와 예화로 자신의 말씀을 전하셨다는 성경의 증거는 설교 내의 예화 사용을 지지한다.
예화는 청중으로 하여금 성경을 인간적인 상황에 기초해서 이해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인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훌륭한 강해 설교에서 예화는 없어서는 안될 필수 요소이다. 왜냐하면 예화는 청중의 흥미를 쉽게 유발시킬 뿐만 아니라, 본문의 의미를 더 넓고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예화는 단순히 지적인 지식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예화는 성경의 진리를 모든 사람들이 동감할 수 있는 상황에서 보여주기 때문에 성경의 진리와 인간의 경험을 결합시켜 주고,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슴을 이해하기 쉽고, 적용하기 쉬우며, 현실적인 것으로 만들어준다. 이런 효과는 단순히 논지만 제시하고 설명해서는 얻을 수 없다. 우리가 설교의 다른 요소를 오용할 수 있듯이, 예화 또한 잘못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오용이 두려워서 예화를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까지 막아서는 안된다. 예화가 숙련된 기술자의 손에 들어가면, 그것은 설교자가 소유할 수 있는 가장 설득력있는 설교 방법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이런 장점을 충분히 이끌어 내기 위해서, 우리는 예화를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하며, 또한 그것이 잘못 사용된 경우를 식별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예화를 시작함에 있어서 예화와 진리 사이에 벽을 놓는 것과 같은 들어가는 말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설교자의 태도를 통해서 예화를 제시하겠다는 의미를 충분히 전달받을 수 있고 혹은 예화의 사건이 일어난 시간과 장소를 말하면서 현재 당면하고 있는 상황과 예화의 상황을 분리시킴을 통해 예화가 들어감을 암시할 수도 있다. 그리고 예화의 출처를 상세히 밝힐 경우에는 청중의 집중이 흐려질 수 있기에 곧장 예화의 내용으로 들어가는 것이 현명하다. 상세한 예화의 설명은 청중이 예화의 상황 속으로 빨려 들어가 보다 예화를 실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러나 과다하고 불필요한 예화설명은 반대로 청중의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 예화는 짤막하지만 그 가운데 절정의 순간을 만들어 관심을 가져야 할 경험에 더욱 주목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하고 그들의 흥미나 관심이 줄어들기 전에 설명한 요지와 잘 결합하여 의미있는 결론을 내려주어야 한다.
예화를 제시할 때 사실을 확실히 제시하여야 하고 허위나 믿을 수 없는 예화를 조심하여야 한다. 예화를 너무 많이 제시해서 균형을 잃게 만들지 말아야 하며 간결하게 사용하여야 한다. 그리고 위대한 성인들의 예화를 사용한다면 청중들은 현실과 괴리감을 느끼게 된다. 가까운 곳에서 현실 위주로 예화를 사용하여야 한다. 예화를 경솔히 사용함으로(특히 타인의 비밀을 예화로 사용함을 통해) 상처를 주면 안되고 자신 이외에 어느 누구도 놀림거리가 되어서는 안된다. 자신이 설교 속에서 영웅이 되어서도 안되며 불경스럽고 천한 용어는 최대한 자제하도록 하여야 한다.
예화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기를 원한다면, 경험을 분리해서 이끌어내고 결합시키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이를 위해서 설교자들은 먼저 주위의 모든 것들이 예화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워야 한다. 사건과 상황, 특성, 심지어 환상까지도 예화로 사용될 수 있다. 우리가 삶의 경험을 이용해서 진리를 설명하면, 청중은 그 경험을 통해서 신학적인 원칙을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상을 영적인 틀 안에서 바라보는 데 익숙해질 수 있다.
예화는 설명이 아니라 그 설명을 위해서 사용되는 도구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예화는 대중에게 흥미를 주고 목사의 생각을 설명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진리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쉽게 적용할 수 있게 만드는데 목적이 있다. 예화는 설교자가 청중의 의지에 영향을 주기 위해서 사용할 때 가장 효과적이다. 결국 예화는 설교 안에서 증명이라는 역할을 감당한다.
제 8장 적용의 실제
적용은 지금 현실에서 나타난 영적 진리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적용이 없다면, 설교자가 설교를 할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적용이 없는 진리는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설교는 진리를 선포할 뿐만 아니라 그 진리를 적용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설명하기 전까지는 설교를 완벽하게 끝마쳤다고 할 수 없다. 정확한 강해를 하려면, 본문의 내용에 초점을 둔 적절한 적용을 제시함으로써 설교에 관련된 연구를 마쳐야 한다. 그러므로 설교자들은 본문을 연구하는 막바지 과정에서 적용을 결정하지만, 설교문을 작성하기 전에 머리 속에서 적용을 생각해 두어야 한다. 설교에서 무엇을 제시할지 결정하기 전에 설교문을 미리 작성하지 말라. 설교의 논조나 표현, 구조를 결정하기 전에 먼저 어떤 적용을 제시할지 결정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설교자는 목적지도 정하지 못한 채 도로를 설계하는 꼴이 될 것이다.
강해 설교자들이 제시하는 적용은 다음의 네 가지 주요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1) 현재 하나님이 나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설교자는 본문에서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제시되었던 성경 원칙을 식별해 내야 하고, 이 원칙을 적용시켜 그들의 행동과 태도, 신앙을 이끌어줄 수 있는 교훈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설교자는 청중이 처해 있는 현재 상황을 직시하고 그 안에서 성경 원칙을 적용함으로써, 일반적인 원칙으로부터 예리한 적용으로 한 단계 나아갈 수 있다.
(2) 하나님은 그것을 어디에서 행하기를 원하시는가?: 적용을 제시하면서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명시해주는 것은 성숙한 설교의 주요 특징이다. 적용은 강해 설교의 진정한 목적으로서, 오늘날의 성도들이 특정한 상황에서 성경에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잇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일반적인 교훈은 성경 본문에서 제시해 주지만, 특정한 상황에 맞는 구체적인 적용은 설교자의 경험과 용기, 배려, 그리고 영성을 통해서 직접 만들어야 한다.
(3)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왜 내가 행해야 하는가?: 적용은 적절한 교훈 뿐만 아니라 동기까지 제공해 주어야 한다. 죄의식이 아니라 은혜를 통해서 청중에게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사랑을 통해서 동기 부여를 받을 때, 주님과 그의 영광이 우리의 목적이 되며, 또한 그의 목적이 우리의 목적이 된다. 사랑이 없으면 어떤 적용을 제시해도 성도들로 하여금 자신이 아닌 다른 대상을 섬기게 만들 수 없다. 은혜를 통해서만 성도들의 순종을 자국할 수 있기 때문이다.
(4)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어떻게 행할 수 있는가?: 설교자는 적용을 제시할 때 동기부여 뿐 아니라 그 방법도 제시해야 한다. 단순히 말만 한다고 해서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적용을 완벽하게 제시하려면 설교의 목표를 성취하게 해줄 실제적인 방법과 함께 영적인 방법도 제시해야 한다. 우리는 적용과 관련해서 무심코라도 자신을 의지하는 복음을 전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은 하나님 안에 있다.
적용은 독창력(창조성)과 용기를 필요로 한다. 독창력은 성도들이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 싸우는 여러 가지 상황을 상상하는 것이며, 용기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런 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청중이 설교 중에 가장 귀를 기울이지 않는 부분이 바로 적용이다. 하지만 청중의 거부를 최소화시키기 위해서 설교자가 적용을 피할수는 없다. 하나님의 백성 앞에서 인간이 행해야 할 의무가 무엇인지를 분명한 용어로 설명하는 것이 우리의 소명이다. 적용을 사랑을 가지고 정확하게 지시하라.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야기하듯이, 강단에서 자신이 뜻하는 바를 정확하게 이야기하라. 반드시 사랑으로 이야기하되, 그 상황에서 꼭 필요한 말과 성경에서 지시하고 있는 말은 반드시 전해 주어야 한다.
적용은 모호한 곳에서 이끌어내야 하며 완벽한 적용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깊은 영성이 필요하다. 적용은 중립이나 동의가 아니라 헌신과 행동을 요구하는 부분으로 확실한 결론이 필요하다. 적용점을 만들어 냄에 있어서 상식없이 제시하는 적용은 청중들의 반감을 만들어 내기 쉽다. 그림의 떡 같은 원칙, 높은 장애를 가진 적용, 지극히 한정적인 대상 등은 적절하지 못한 적용이다. 설교자들이 설교를 함에 있어서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 역시 설교자의 신용을 손상시킬 수 있다. 적용점을 설교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서 때로는 가혹하고 엄격한 표현을 통해서, 때로는 부드러움을 통해서 감정을 실어 설교되어져야 한다. 적용점을 설교함에 있어서 설교자 개인의 신용 역시 필요하다.
제 9장 서론, 결론, 전환 문장
서론은 청중이 나머지 설교를 들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설교자는 서론 부분에서 청중의 시선을 끌 만한 사상을 제시해야 한다. 서론은 청중의 호기심과 관심, 기쁨, 혹은 놀라움을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 즉 서론의 임무는 청중의 주의를 집중시키는 것이다. 이런 노력을 지체하지 말라. 설교에서 첫 인상을 결정할 수 있는 기회는 두번 다시 오지 않는다. 서론은 앞으로 설교자가 전할 메시지를 설명하고, 증명하며, 지정하고, 암시하며, 혹은 대조를 통해서 설명하거나, 그밖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청중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설교의 서론을 사람들의 주의를 끄는 흥미로운 이야기로 시작했다면, 그 메시지의 결론은 훨씬 더 강력해야 한다. 청중은 다른 어떤 부분보다도 결론을 훨씬 더쉽게 기억하므로, 그리고 설교의 구성 요소들이 모두 이 절정 부분을 위해서 준비된 것이므로, 결론은 메시지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결론은 앞에서 설명했던 내용을 모두 포함해야 하며, 메시지의 의미와 결말이 청중에게 전달되는 데 방해가 되는 것들은 모두 배제시켜야만 한다. 이런 목적들을 모두 성취하기 위해서, 결론은 다음의 요소들, 요점을 되풀이함(간결한 요약), 훈계(혹은 마지막 적용), 상승(절정), 결말(명확한 결말)을 모두 포함해야 한다.
결론은 설교의 목적지이다. 좋은 결론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핵심 용어를 사용하여 설교의 중심 사상을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어야 한다. 한 문장으로 간결하게 요약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설교자는 결론을 통해 앞에서 설명했던 사상을 상기시키고 감정을 고조시키며 청중이 메시지의 취지에 맞는 행동을 하도록 권고하여야 한다. 좋은 설교에서는 마지막 60초가 가장 역동적인 시간이며 마지막 훈계는 설교 내용을 통해 설교 내용을 더욱 분명하게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 문장은 의미심장할 필요가 있다. 인용문을 결론부분에 사용한다면 가능한 간결하게 인용하고 핵심 사상을 강조하며 힘주어 말하여야 한다. 사람들의 낙담하게 하는 설교 역시 올바르지 못한 설교이고 결론을 적절한 타이밍에 제대로 끊어주는 것 역시 필요하다.
전환문장의 유형에는 5가지를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전후 사상을 연결해주는 진술을 사용하는 것으로 이것뿐만 아니라 저것도, 다음은, 그러나, 그래서, 결과적으로, 아직은 등의 단어를 통해 앞의 내용과 뒤의 내용을 연결시키는 방법이다. 둘째는 대화체 질문을 통해서 설명 속에 몰입하게 만드는 것이다. 질문의 대답이 분명하기만 하다면 메시지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번호붙이기 역시 예술적인 효과를 거의 느낄 수 없기는 하지만 청중의 주의를 집중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넷째로 관계성과 이미지를 가지고 전환 문장을 제시하는 그림 그리기 방법이 있다. 다섯째로 게시판을 통해 청중이 설교의 개요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고 게시판이 지시하는 길을 따라갈 수 있게 할 수 있다.
전환 문장이 훌륭한지 아닌지에 따라서 그 메시지가 평범한 것이 될 수도 있고 훌륭한 것이 될 수도 있다. 설교자는 전환 문장을 이용해서 설교의 서론과 본론의 관계를 나타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본론의 각 부분들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 결론과 앞의 메시지가 어떤 관련이 있는지 보여줄 수 있다. 이런 관계들은 주로 논리적인 연결 관계가 대부분이지만, 그외에도 심리적이거나 감정적인, 그리고 심미적인 관계일 수도 있다.
좋은 전환 문장은 개념적인 리듬과 감정적인 리듬을 조화시켜, 설교 전체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해 준다. 전환 문장은 설교의 구성 요소를 하나로 묶어줄 뿐만 아니라, 청중에게 그 전개 과정과 방향을 알려준다. 그러나 전환 문장의 기능이 단순히 나아갈 방향만을지적해 주는 것은 아니다. 전환문장은 현재 제시된 문제를 앞에서 논의한 내용과 연결시켜 주어야 한다. 청중은 설교자의 개요를 볼 수 없지만, 전환 문장이 청중에게 주요 사상과 보조 사상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알려줄 것이다. 설교자들은 여러 가지 사상을 구분하기 위해서 전환 문장을 사용하기도 한다.
제 3편 그리스도 중심의 메시지와 그 신학
제 10장 구속적인 설교 방법
FCF를 분명하게 제시하면 설교가 분명한 목적을 가지게 되고, 설교자는 한가지 목적에 중점을 두고 설교를 조직할 수 있다. FCF는 설교에 대한 정보를 이끌어 낼 뿐만 아니라, 설교자들이 이 정보와 관련된 적용을 이끌어낼 수 있게 해준다. 하나님은 우리를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들기 위해서 말씀을 사용하신다. 성경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의 타락한 측면을 영적으로 완숙한 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에서 말하는 목적에 충실한 설교는 FCF를 기본으로 다루어야 한다.
성경 말씀은 타락한 상태에 초점을 둔다. 그리고 타락한 인간에게 구원을 보증하고 구원의 특성을 명확하게 설명한다. 나아가 구원을 타락한 상황에 적용한다. 만약 본문 안에서 구원에 대해서 하나도 알 수 없다면 그것은 올바른 설교가 아니다. 설교자가 구원을 통한 타락한 상황의 타개책을 청중들에게 설명하고 촉구하고 있을 지라도 그것이 단순히 덕행과 동정만을 주장하는 것이라면 그 메시지는 반 기독교적인 것이다. 설교는 반드시 기독교적이어야 한다. 구원과 성화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가 설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설교자들이 하나님의 구속 사역과 자신의 설교를 직접 연관시키지 못하였다면 성경의 계시를 적절하게 설명한 것이 아니다. 모든 성경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드러내려는 목적과 취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본문의 메시지와 역사, 전개 과정이 다른 본문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모든 본문은 FCF를 다루고 있지만,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 FCF에 대한 해결책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해주지 않는다. 성경은 인간의 궁핍함의 뒤에서 자비를 보이시는 하나님을 보기를 원한다. 우리는 FCF를 통해서 구원자와 구원 사역을 설명해야 한다.
강해 설교에서는 구원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 본문 이외에 다른 자료를 첨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강해자는 설교의 메시지를 본문에서만 이끌어 내고 전개시켜 나가야 한다. 본문이 그리스도에 대해서, 혹은 그의 메시아 사역에 대해서 직접 언급하고 있는 경우, 강해자는 본문에서 밝히고 있는 구원 사역을 그대로 설명하면 된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다는 사실은 구약의 예표들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리스도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는 본문을 다룰 때, 내용은 물론이고 예표로도 구세주의 사역을 설명하지 않는 본문이 있다면, 설교자는 정황(상황)에 근거해서 메시지의 구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구속에 초점을 두지 않은 메시지는 인간 중심적인 메시지가 되어버린다. 영웅적인 인물과 같이 되라는 설교는 큰 약점을 가진 설교를 만들어낼 것이다. 본문에 등장하는 영웅적인 인물은 사실 완벽한 인간이 아니며 허점 투성이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칭찬받을 몇 가지에 대해서 우리는 본받을 수 있어야 함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들이 완벽한 자들이 아님 역시 밝혀야 한다. 그리고 외적인 모방보다 더한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와야 한다는 것을 청중이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리고 청중들이 도덕적 훈련을 통해 어느 목표를 달성하게 될 경우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다는 교만한 생각을 들게 만드는 설교를 하여서는 안되며 하나님의 은혜와 그 가운데 연약한 인간이지만 노력해야 함을 연관시켜 설교해야 한다. 거룩을 위한 노력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그들의 희망과 승리는 구세주의 도움 속에서만 확신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라고 해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도덕적인 행위를 제시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그리고 우리의 행위 안에서 영광을 받아야 할 분은 오직 그리스도 한 분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거룩을 위한 노력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노력은 결국 인간 중심적인 종교, 실패할 수밖에 없는 종교로 나아갈 뿐이다. 충실한 강해 설교는 모든 본문을 구속이라는 상황에서 풀어 나간다. 설교자가 설교를 통해서 모든 사람들이 구세주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인도했다면, 그래서 그들이 구세주의 도움을 확신하면서 세상 속으로 걸어갈 수 있게 했다면, 희망과 승리가 지평선을 밝혀줄 것이다.
제 11장 구속적인 설교의 전개
설교자는 예수님의 인격이나 사역에 관한 구절을 메시지 속에 교묘하게 쑤셔넣어야 구속적인 설교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구원 계획과 그 계시 안에서 본문이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살펴봄으로 충분히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를 할 수 있다. 본문의 내용이나 목적을 전혀 개의치 않고 예수님의 성육신과 구속 사역을 직접 언급해야만 그리스도 중심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해이다. 설교자는 본문에 나타난 교훈을 청중에게 제시하기 위해 그 근거가 되는 구속의 진리를 강조할 수도 있고, 교훈을 먼저 설명하면서 구속적인 사건을 제시할 수도 있으며 설교의 끝부분에 구속적 진리를 제시할 수도 있다. 그리스도를 언급함은 설교 가운데 제멋대로 십자가를 언급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사역이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분명하게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이다. 인간의 죄에도 불구하고 주시는 은혜, 죄의 세력을 물리치는 은혜, 죄의식을 없애주는 은혜, 거룩으로 이끄는 은혜 네 가지 유형으로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 유형을 나눌 수 있다.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를 시작하기에 좋은 위치는 본문에서 다루고 있는 FCF를 명확하게 진술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 메시지가 청중에게 얼마나 필요한지 깨닫게 함으로써 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려는 단순한 전략이 아니다. 타락한 상황을 분명하게 제시하면, 설교자가 어떤 본문을 강해하든지 구속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설교자가 본문의 내용이나 상황에 근거해서 신학적인 진리나 역사적인 사실을 설명하고, 그것을 통해서 현재의 본문이 사탄과 여자의 후손 사이의 싸움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증명할 수 있다면, 그 메시지의 중심에는 이미 그리스도가 있는 것이다.
충실한 설교란 사람들이 자신을 뛰어넘어 모든 것을 제공해 주시는 분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들을 행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의 요구를 행할 수 있다. 구속적인 강해는 이런 과정을 결코 손상시키지 않고 완벽하게 재현해 낸다. 청중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속 사역이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분명하게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이다.
설교자는 인간의 무능함을 조명하는 성경 본문의 관점을 드러냄으로써 자연스럽게 청중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고백하게 만든다. 우리의 겸손 안에 순종의 방법이 있다. 하나님의 활동을 믿고 의지하면서 인간의 궁핍함을 고백하는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일관된 주제이며, 성도들도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할 수 있다.
목사가 단순히 성경에 제시된 도덕적인 교훈만을 설교한다면 성도들의 삶에서 도덕적인 모습이 재연될 수는 있을지라도 이는 외면적인 변화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진정한 변화는 내면적인 변화와 외면적인 행동의 변화가 함께 일어나는 것이며 이 것을 위해서는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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