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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사상, 중세철학 개관 : Medieval Philos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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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중세 사상

 

개관 : 중세 철학(medieval philosophy)

 

45세기 로마 제국 몰락부터 15세기 르네상스 시대까지의 철학적 사변. 좁은 의미의 중세철학은 서(西)로마 제국의 멸망을 고대의 종말로 보고 그 이후를 중세로 보는 역사학상의 시대구분을 따라 5세기 말에서 1516세기에 이르는 약 1000년간의 서양철학을 말한다. 이 좁은 의미의 중세철학은 스콜라 철학과 거의 같은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중세철학은 그리스도교 철학이라고도 할 만큼 그리스도교 신학과 밀접한 관계에 있으므로 교부시대(敎父時代)를 더 거슬러 올라가 원시 그리스도교 시대까지 중세철학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중세철학과 그리스도교 그리스도교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중세철학은 그리스로마 초기의 고대 철학과는 당연히 이질적인 관심과 요구에서 출발하였다. 그 발단은 그리스도의 탄생과 복음의 선포, 사도들의 선교활동, 초대교회의 형성이라는 종교적 사건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따라서 중세철학의 근본 주체는 그리스도교와 그 모태가 된 유대교의 종교적 세계관 속에 그 싹을 볼 수 있다. 이 세계관은 이미 구약성서의 창세기가운데 신화적인 표현으로 기술되어 있었다. 그에 따르면 신()은 유일(唯一)의 절대자요, 세계와 그 안의 만물은 󰡐()에서 창조(creatio ex nihilo)󰡑하고 인간에게 󰡐신의 모습(imago Dei)󰡑으로서의 특별한 지위를 주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독특한 세계관은 헬레니즘 세계에서 그리스적 문화와의 만남을 통해 명확히 자각되면서 처음에는 󰡐이 세상의 지혜󰡑인 그리스적 자연관이나 합리주의와의 대립으로서 나타났다. 이 자각은 그의 논리적 심화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그리스 철학을 방법으로서 채용하게 되고, 신앙적 세계의 이해는 점차 신학의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교부철학에서 스콜라철학에 이르는 중세철학의 걸음은 이러한 신앙적 세계관의 논리화, 체계화라고 볼 수 있다.

 

중세철학의 방법 중세철학은 우선 그리스도교가 자기의 신앙이 진리임을 증명하고 지적인 반대자의 공격이나 비웃음으로부터 신앙을 지키기 위한 변증(辨證)의 도구로서 출발하였다. 역사의 진전과 더불어 철학의 자립성이 더욱 증대되었는데, 이러한 입장은 중세철학의 어떤 시기에도 해당된다. 이것은 그리스도교와 나란히 중세철학에 중요한 구실을 한 유대교와 이슬람교에도 공통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중세철학은 그리스적 논리나 이성만을 논증의 유일한 방법으로 삼지 않고 대체로 다음 세 가지 방법을 병용하였다. 인간이성에 보편적으로 승인되어야 하는 논리학적인 제원리, 세계나 인간에 대한 경험이나 관찰에 근거한 지식, 종교상의 권위에 의하여 진리로 인정된 계시나 교의이다. 이 중에서 첫째 원리는 그리스 철학에 의존했는데, 교부시대에는 주로 플라톤 철학을 규범으로 삼았으며, 이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論理學)이 이에 덧붙여졌다. 그 후에는 신()플라톤적인 절충주의가, 13세기 후에는 주로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사고가 주류를 이루었다.

 

중세철학의 전개 그리스철학을 최초로 교부학(敎父學)과 결부시킨 사람은 알렉산드리아의 철학자 필론이다. 플라톤 철학은 그를 중개로 하여 알렉산드리아학파의 공통사상이 되어 아우구스티누스까지 계승되었다. 보이티우스는 그리스도교적은 아니었으나 플라톤 이외에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적 제저작을 번역해설하여 그것을 서유럽에 소개함으로써 다가올 스콜라철학의 준비를 갖추었다. 최고 존재자인 신으로부터 질료적 피조물(質料的被造物)에 이르는 세계의 제존재의 질서를 신플라톤적 색채가 짙은 신비주의적 세계상(世界像)으로 종합 정리한 위()디오니시우스는 그 후의 중세적세계적 세계관의 윤곽을 제공하였다. 스콜라 철학 시대가 되자 논리적 요구가 더욱 고조되고 신앙에 가능한 한 합리적 기초를 부여하기 위한 신학의 학적 정비(學的整備)가 적극적으로 행해지게 되었다. 󰡐화해(和解)를 구하는 신앙(fides quaderens intellectum)󰡑이라는 안셀무스의 입장은 이러한 사정을 잘 나타낸다. 중세 최고의 예리한 변론가인 아벨라르는 이와 같은 논리적 요구를 한층 더 정밀하고 체계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촉진제가 되었다. 13세기에는 풍부한 그리스 철학의 문헌을 가진 아라비아 문화권 철학자들의 영향으로 스콜라 철학은 전통적인 신학적 형이상학에 더하여 자연철학(自然哲學)에의 확대를 필요로 하였다. 이 때 T.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학적 방법을 채용함으로써 이 방면의 가능성을 여는 동시에 그때까지의 그리스도교적 철학의 성과를 종합하는 일대 체계를 완성하여 중세철학에 불멸의 업적을 남겼다. 중세철학이 사용한 제2의 논거인 관찰경험에 의거한 지식은, 예컨대 아우구스티누스가 키케로를 통하여 배웠다고 하더라도 본질적으로는 그리스도교 자체의 내면성이 이것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계시(啓示)나 종교상의 권위를 논증의 근거로 하는 경우에는 대개 교회가 승인한 사항이 증거로 제시되었는데, 스콜라 철학 시대에는 교부, 그 중에서도 아우구스티누스의 권위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중세철학의 의의 중세철학은 이와 같은 몇가지 근거로 나타나는 진리를 상호 모순되는 일 없이 조화시키려 함으로써 고대와 근대철학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자적인 정신적 세계를 구축하고, 그 논증법을 개발하였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종교적 제약도 있었고, 또 철학이 󰡐신학의 시녀(ancilla theologiae)󰡑로서의 역할도 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러기 때문에 중세철학은 그 독자성과 심원성(深遠性)을 지닌다. 신과 세계와 인간에 관한 통일적인 질서와, 인간의 자유와 존엄의 확실한 근거를 추구해 온 점은 중세철학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르네상스 이후 경시되었던 중세철학은 19세기 후반부터 급속하게 재인식되기 시작하여 오늘날에는 C.보임커, M.울프, M.그라프만, E.H.질송 등의 연구로 점점 더 높이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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