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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의 학문 철학! 서양철학사 개관 :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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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관 : 서양철학사(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철학은 인간이 처해 있는 세계 전체를 진실한 모습에서, 즉 세계 전체의 객관적 진실을 포착하고 이것을 개념적으로 일반화하려는 이론적 인식활동(세계관의 학문)을 말하며, 이것을 지침으로 인간의 개인적사회적 생활을 보다 잘하려는 실천적 의도를 갖는 학문이다. 물론 여기에도 역사적 발전과정이 있다. 원시민족 간에 있던 여러가지 신화, ()과학적인 해석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나 적어도 과학적 사유(思惟)의 탄생을 볼 수 있는 시기를 그 시원(始源)으로 한다.

 

 

고대 철학은 기원전 600년경부터 그리스에서 시작된 것으로 본다. 이 시기에서 기원후 4~5세기, 즉 고대사가 끝날 때까지의 철학을 고대철학이라고 하고, 이 고대철학은 3기로 나눌 수 있다.

1 창시기(創始期)의 철학 : BC 65세기를 말하며 자연을 대상으로 그 속에 존재하는 변화하지 않는 원질(原質)을 탐구하였다. 원질을 물로 본 탈레스, 무한정한 것이라고 생각한 아낙시만드로스, 공기로 본 아낙시메네스, 또 불생불멸의 󰡐있는 것󰡑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한 파르메니데스, 불이라고 본 헤라클레이토스, 다수의 원질이 존재한다고 생각한 다원론자들이 이 시기에 속한다.

2아테네기()의 철학 : BC 5세기 후반이 되자 지금까지 자연을 대상으로 하던 철학은 인간문제를 대상으로 삼게 되었다. 프로타고라스와 고르기아스가 이런 전회(轉回)의 첫발을 내디딘 사람이었는데, 결코 객관주의적인 해답은 얻을 수 없다는 상대주의의 입장에 있었다. 이에 반해 인간의 영혼을 철학의 주제로 삼은 것은 소크라테스였다. 그 근본 사상은 󰡐()은 지()󰡑라는 것이었고, 제자인 플라톤은 이데아론 사상을, 또 그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의 사상을 이어 받으면서 독자적인 철학체계를 만들었다. 이 아테네기의 철학은 고대철학의 최성기였다.

3헬레니즘로마시대의 철학 : 아리스토텔레스 사후에서 고대말까지의 철학을 말한다. 이 시기 초에는 키프로스의 제논이 창시한 금욕주의인 스토아학파, 에피쿠로스를 창시자로 하는 쾌락주의인 에피쿠로스학파, 퓨론이 창시한 회의학파가 있었으며, 이들은 인간 자신의 힘으로 안심입명(安心立命)을 구하려 하였는데, 후기에 이르러 점차 인간 이상의 초월적인 신을 찾고 구원을 얻으려 한다. 피론의 철학, 신플라톤학파의 철학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중세 중세철학은 그리스도교를 바탕으로 한다. 395년 그리스도교가 국교로 자리를 굳히자 가톨릭교회의 교리를 확립할 필요가 생겨 교부(敎父)들이 이를 담당하였다. 최대의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신플라톤학파의 철학에서 많은 영향을 받으면서 진정한 기독교적인 철학을 세웠다. 그러나 중세 철학은 역시 스콜라 철학이 이를 대표한다. 본래 교회부속학교 교사들이 세운 철학인데 9세기에서 15세기 중반에 이르며 흔히 초기중기후기로 나뉜다.

초기 913세기 초로 대표적인 사람은 안셀무스 등이다. 안셀무스는 󰡒알기 위해 나는 믿는다󰡓고 말하며 신앙내용을 지식에 의해 기초로 삼으려는 생각을 분명히 하였다.

중기 13세기이며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교회의 정통적인 견해와 잘 융합시켜 큰 체계를 세운 스콜라 철학의 제1인자이다. 여기서는 신앙과 지식의 일치라는 확신은 다소 흔들린다.

후기 1415세기 전반이며 스콜라 철학의 쇠퇴기이다. 대표자 W.오컴은 경험적인 지식을 중시하고 그리스도교의 교리는 결코 지식적으로 기초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이런 신앙과 지식의 완전한 분리라는 주장은 스콜라 철학의 붕괴를 의미한다.

 

 

르네상스기 신앙과 지식의 분리를 주장하게 되자 그리스도교의 교리에 구애됨없이 자유로 생각하려는 근대적 정신이 생긴다. 이런 중세적 속박에서 서서히 벗어나기 위한 과도적인 시기가 르네상스시대이다. 이 시기의 철학은 먼저 그리스 철학의 부흥으로 시작된다. 이른바 인문주의이다. 그 중심은 이탈리아였고 대표적인 사람은 플레톤이다. 이런 인문주의운동에서 J.뵈메는 우리들 내부에도 신의 생명이 활동한다는 신비적 범신론을 끌어내었다. 또 신은 자연 속에 내재하여 우주에는 전체적으로 완전한 조화와 미()가 성립되어 있다는 범신론적 자연철학을 말한 G.브루노 등이 있다. 종교개혁을 한 M.루터나 J.칼뱅, 국가를 강대하게 하기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N.마키아벨리, 근대자연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H.그로티우스는 근대적 정신에 깊은 영향을 준 사람들이다.

 

 

근대 이런 과도기를 거친 후 17세기에 근대철학이 성립된다. 인간자신의 입장에 자신을 가지며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것만을 인정하려는 것을 그 근본성격으로 한다

합리론과 경험론근대에 이르러 먼저 생긴 것은 유럽대륙을 중심으로 한 합리론적 철학과 영국에서 성행한 경험론적 철학이다. 이 두 입장은 대립적인 위치에 있었다. 합리론철학의 창시자는 R.데카르트이다. 그는 인간의 이성(理性)을 신뢰하고, 우리가 이성적으로 확실한 것에서 확실한 것으로 추리해 가면 진리를 인식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를 기치로 거기서 신의 존재, 물체의 존재라는 것도 추리에 의해 확실한 신뢰로서 연역된다고 생각하였다. 데카르트의 뒤를 이어 합리론 중에 꼽히는 사람은 A.괼링크스, N.말브랑슈 등의 우인론자(偶因論者), 기하학적 질서에 따라 자신의 저서 에티카(倫理學)를 논증하려던 B.스피노자, 기계론적 자연관과 종교적 목적관을 조화시켜려 한 G.W.F.라이프니츠, 독일계몽주의 철학자 C.볼프 등이 있다. 경험론 철학은 인간의 인식에서 경험이라는 것이 수행하는 역할을 중시한다. F.베이컨은 경험을 중히 여기며 자연연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자연연구에서의 귀납법의 중요성을 역설하였으며, T.홉스도 기계론적 자연관을 절대라고 생각하고 정신적인 것도 똑같이 기계론적으로 설명하려 하였다. 둘 다 경험론적 입장에 섰으나 진정한 경험론 철학의 기초를 세운 것은 J.로크이다. 로크는 인간의 인식은 모두 감각과 반성이라는 두 가지 경험에서 생기며 이 경험으로 단순관념이 주어진다. 아무리 복잡한 관념이라도 그 기원은 단순관념으로 분해된다. 로크의 이런 개념은 G.버클리, D.흄 등에 의해 전개되고, 흄은 경험적으로 보증되지 않은 것을 모두 의심한다는 회의론적 경향을 보인다.

칸트의 비판철학 이런 합리론과 경험론의 대립을 넘어서려는 것이 I.칸트였다. 칸트는 인식은 경험없이 성립될 수 없다는 경험론의 주장을 인정했으나 경험론에 철저하기에는 너무 강한 형이상학적 요구를 가지고 있어 합리론철학에 대한 공감을 버릴 수 없었다. 칸트는 󰡒우리의 인식은 결코 사물 그 자체의 모습, 물자체의 세계를 포착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인식의 대상은 현상계(現象界)에 한정되는 것이나 물자체 세계의 존재의 여지가 남는 것이며 여기에 형이상학이 성립되는 길이 열린다고 말하였다. 칸트는 도덕적 실천의 입장에서 이 형이상학을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처럼 칸트는 우리의 인식능력 그 자체를 비판함으로써 철학의 새로운 길이 열린다󰡓고 생각했으며, 스스로의 철학을 비판철학이라 불렀다.

독일관념론칸트의 철학을 이어 독일에서 일련의 철학이 생겼다. J.G.피히테F.W.J.셸링G.W.F.헤겔의 철학, 즉 독일관념론이 그것이다. 피히테는 칸트 철학에서 출발하여 현상계와 물자체라는 이원론을 넘어 절대적 자아(自我)라는 것을 생각함으로써 통일적인 체계를 만들려고 하였다. 셸링은 피히테의 절대적 자아라는 개념을 넘어 모든 것의 근저에 존재하는 자기동일적(自己同一的)인 절대자라는 개념에 도달하고, 헤겔은 셰링 철학에서 출발하여 절대자를 자기동일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자기를 실현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헤겔의 철학은 이성을 본질로 하는 절대자의 자기전개에 의해 모든 사상을 설명하려는 것이며 이성주의적 형이상학이라고 할만한 것이었다.

 

 

현대 헤겔의 철학은 헤겔 생존에는 큰 세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의 사후 비판을 받게 되었다. 즉 이성주의적 철학에 대한 비판에서 비이성주의 경향이 강하게 대두되어 현재에 이른다. 그러므로 헤겔 이후(1830년대 이후)의 철학을 흔히 현대철학이라고 한다. 헤겔철학의 비판은 실증주의적 입장과 비합리주의적 입장으로 나눈다. 실증주의적 입장으로부터의 비판은 헤겔학파 내부 즉 L.A.포이어바흐 및 K.마르크스F.엥겔스이다. 포이어바흐는 철학은 육체를 가지며 공간적시간적으로 존재하는 감성적(感性的) 인간을 존중하고 거기서 출발하는 인간학이 아니면 안된다고 주장하였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변증법적 유물론을 주장하였다. A.쇼펜하우어와 S.A.키르케고르는 비합리주의적 입장으로부터 헤겔비판을 하였다. 쇼펜하우어는 세계의 본질은 이성이 아니며 오히려 비합리적 맹목적인 삶의 의지라 생각하고 염세적 철학을 내세워 생의 철학의 연원이 되었고, 키르케고르는 헤겔과는 달리 역사 속에서 살고 행위하는 실존으로서의 인간의 입장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른바 실존철학의 연원이 되었다. 헤겔비판으로 생긴 이런 비이성주의적 경향은 그 후 계속 이어져 현재에 이른다. 실증주의적 경향에서는 마르크스주의가 지금도 하나의 세력을 가지고 있으며, E.마흐 등의 실증주의, C.S.퍼스W.제임스J.듀이를 주로 한 미국 철학자가 주장하는 프래그머티즘, R.카르납 등의 분석 철학이 있다. 이 분석철학은 현재의 영미철학의 주류를 이룬다. 비합리주의적 경향으로는 철저히 생이라는 것을 긍정하려고 한 F.W.니체, 비약적창조적인 생을 직감으로 포착하려는 H.베르그송, 생을 해석학적으로 잡으려 한 W.딜타이 등의 생의 철학이 있으며, 실존으로서의 인간을 포착하려는 M.하이데거K.야스퍼스J.P.사르트르 등의 실존철학이 있다. 이 밖에 후설의 현상학도 극히 유력하며 실존철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최근 영미계(英美系) 언어분석철학에서는 마흐나 전기(前期)비트겐슈타인의 영향을 받고 일어난 논리실증주의 정신을 계승하면서, 한편으로는 비판적인 경향도 보인다. 즉 프래그머티즘의 입장을 발전시킨 W.O.콰인 등의 네오프래그머티즘과 또 하나는 후기비트겐슈타인G.라일P.F.스트로슨J.오스틴 등의 영국일상언어학파이다. 1960년 이후 위와 같은 활동은 상호비판과 융합을 보이며 광범위한 영어권 철학으로 부상하였다. 영미 외에 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를 포함, 공통 사색의 장을 이루고 활동한다.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사회정세의 변화로 실존철학이 급속히 약화되고 E.후설의 현상학이 재조명되어 여러 과학과 교류하는 현상학운동이 아메리카 대륙에까지 확대되었다. 해석학도 H.G.가다머 등이 새로이 생명을 불어넣었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구조주의는 정신분석민족학과 관련을 가지며 크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흐름을 탄 비판적 사회이론은 영미계의 언어 행위론을 받아들이며 J.하버마스가 독일에서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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